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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 기자명 나주토픽

시민은 들러리가 아니다

  • 입력 2025.10.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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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들러리가 아니다

 

   요즘 각 지역 축제나 기념행사장을 가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있다. 사회자의 개회 선언 뒤, 초청 인사들이 줄줄이 등장해 마이크를 잡는다. “오늘 행사를 축하드립니다”,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같은 형식적인 말이 반복되고, 그들의 입에서 마지막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이 끝나면 곧장 퇴장이다. 시민은 여전히 더위와 추위 속에 앉아 있는데, 이른바 ‘인사만 하고 사라지는 인사들’이다. 진심이 아니라 ‘의무방문’을 하듯 등장하고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은 시민을 존중하지 않는 관행의 상징이 되었다.

   '시민을 위한 자리'라고 생색내지만 권력 과시의 무대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행사는 본래 지역 공동체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자리다. 그러나 지금의 많은 행사장은 ‘누가 왔느냐’가 중심이 되어 버렸다. 행사 본연의 취지보다 이름값과 체면이 앞선다. 더운 여름 햇볕 아래, 혹은 칼바람 부는 겨울 날 야외 무대에서 시민들은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단상 위 인사들은 자신이 주인공인 양 말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시민의 피로감과 허무함뿐이다. ‘참석’이 아니라 ‘출석 체크’에 불과한 참여, ‘축사’가 아니라 ‘홍보’에 가까운 발언, 그리고 ‘공감’보다는 ‘노출’에 목적을 둔 행사 문화. 이런 구태의연한 방식이 반복되는 한, 시민은 언제나 조연일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행사 참여의 잔혹사이다. 한 지자체 행사는 오후 2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실제 본 행사는 3시가 다 돼서야 시작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초청 인사 10명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이 행사가 큰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모두 비슷한 말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마지막 축사가 끝나자마자 일부 인사들이 손을 흔들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시민들은 황당했다. 정작 공연이나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도 전에 ‘주요 인사석’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인사만 하고 떠나는 인사’가 시민의 존경을 받을 리 없다.  반면, 어떤 문화 행사에서는 달랐다. 사회자가 “오늘은 인사말을 줄이고 바로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관객석에서는 큰 환호가 터졌다. 행사 내내 관객들은 집중했고, 무대는 시민의 열기로 가득 찼다. 축제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준 순간이었다.

   진짜 문제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시간이 길다’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을 향한 태도의 문제다. ‘시민을 위해 준비한 행사’라면서 정작 시민의 시간은 존중받지 않는다. 인사들이 떠난 자리에는 피로와 허무함만 남는다. 시민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인사를 위한 ‘무대 쇼’가 되어버린 것이다. 형식적 예우와 권위적 관행은 이제 시대착오적이다. 시민의 눈높이는 이미 훨씬 높다.  이제는 진심이 있는 행사로 바꿔야 한다. 진정한 행사는 ‘누가 왔는가’가 아니라 ‘시민이 얼마나 즐겼는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초청 인사는 이름만 호명하고, 축사는 한두 명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인사말만 하고 떠나는 사람’은 초청받을 자격이 없다. 자리에 앉아 시민과 함께 호흡하고, 끝까지 박수를 보내는 것이 진짜 예우다.

  시민은 더 이상 묵묵히 참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행사의 주인공이자 지역의 동반자다. 행사는 ‘말의 축제’가 아니라 ‘공감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인사말을 줄이고, 시민의 시간을 늘리는 것 바로 그것이 진심이 있는 행사, 품격 있는 도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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