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 대한 전망은?
우리는 오늘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개방과 구조조정을 내세워 위기를 돌파했고, 뒤이은 정보통신 혁신과 남북 대화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었다. 그 경험은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축으로 올라서는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화는 과거처럼 무한 개방을 뜻하지 않는다. 미·중 전략경쟁, 러·우 전쟁, 중동 지역 분쟁, 기술 패권 다툼이 겹치며 세계는 안보와 가치, 기술을 기준으로 연대와 배제를 동시에 강화하는 국면으로 이동했다. 세계화는 후퇴가 아니라 재배열이다.
이 변화는 우리의 일상에도 깊게 스며든다. 팬데믹 이후 물류 차질과 비용 상승은 ‘최저가 중심’의 세계화를 흔들었다. 물가는 치솟고 성장률은 둔화되며, 청년 일자리와 지역 경제는 체감 위기에 놓였다. 저출산과 고령화, 지방 소멸 우려는 구조적 문제로 굳어졌다. 한편 외국 인력의 유입과 결혼이민의 확대로 한국 사회는 이미 다문화 일상에 들어와 있다. 이는 노동력 부족을 메우는 현실적 해법이지만, 언어·교육·주거·의료를 아우르는 정교한 통합정책 없이는 사회 갈등의 또 다른 씨앗이 될 수 있다. 이제 논점은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며 생산성과 공동체 신뢰를 높일 것인가”다.
세계 정치·경제의 거친 파도 앞에서 각 국가는 자국 이익을 앞세운다. 보호무역과 제재, 표준과 규범을 활용한 보이지 않는 관세가 일상화됐다. 한국이 이 벽을 뚫으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첫째, 공급망은 ‘가성비’가 아니라 ‘복원력’을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 동맹과 우호국을 축으로 하되, 중국·인도·아세안·중동·아프리카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다중 바스켓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기술과 안보가 결합된 영역·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AI에서는 핵심 소재·장비·소프트웨어의 전략적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셋째, 새로운 무역 장벽인 탄소·데이터·안전 규정에 선제 대응해 ‘규범의 수용자’를 넘어 ‘규범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탄소국경조정, 데이터 신뢰 프레임, 녹색·디지털 표준을 우리가 제안하고 시험대 삼을 때 수출의 문은 다시 열린다.
세계화의 역사에는 그늘도 짙다. 식민과 전쟁, 착취와 수탈의 기억은 제3세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한국 역시 36년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겪었지만, 교육과 혁신, 연대의 힘으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 이 경험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닫혀서는 살 수 없고, 무방비의 개방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해답은 안전한 개방이다. 기술·안보·경제의 균형 위에 다문화 포용과 인구·지역 균형, 디지털·녹색 전환, 공급망 복원력, 규범 선도를 다섯 기둥으로 엮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정치의 역할도 분명하다. 세계의 변화를 정밀하게 읽고, 이념 경쟁을 넘어 국민 삶의 안전망과 기회의 사다리를 먼저 세워야 한다. 청년에게는 미래 산업의 숙련을, 지역에는 혁신과 정착의 인프라를, 기업에는 규제 예측성과 표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화의 다음 막은 빠르고 화려하지 않다. 더 느리고, 더 신중하며, 더 안전을 중시한다. 준비된 나라만이 그 느림 속에서 속도를 낼 수 있다. 한국은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의 파도를 타고 기회로 바꾸어온 우리의 저력을 믿되, 이번에는 안전과 포용, 표준과 연대로 무장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화의 재배열 속에서 한국이 작은 나라이되 단단한 선도국으로 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