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토픽이 만난 사람 (221)
나주초48·나주여중1회 동창생들의 우정이 만든 기적
유래 없는 합동 팔순잔치, 다시 찾은 소꿉친구들의 기쁨 인생의 보람을 노래해
▶ 다시 만난 소꿉친구들,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아이 좋아라, 이 나이 되어서도 깨복쟁이 소꼽친구들 만날 수 있다니…”
팔순을 맞은 나주초등학교 48회와 나주여중 1회 동창들이 함께 부른 환영시의 첫 구절은 그 자체로 잔치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헤쳐 왔어도,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다정한 정이 되살아나는 우정, 그것이 바로 동창의 힘이다.
이 특별한 합동 팔순잔치의 중심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회장을 맡아 동창회를 이끌어온 나종호, 인생 마라톤처럼 동창 모임에 늘 열정을 불어넣어온 나천수, 그리고 암투병을 이겨내며 우정의 힘을 증명해낸 김중민. 이 세 사람은 단순히 주최자가 아니라, 동창 공동체의 기둥이었다.
▶ 해방둥이 세대, 민족과 함께 걸어온 길
우리의 세대는 해방 이후 태어나 전쟁과 가난을 온몸으로 겪었다. 1953년,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하던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이 1인당 3만6천 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세계 6위 경제대국이 된 것은 곧 우리의 땀과 눈물, 그리고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역사와 발자취를 함께 걸어온 동창들이 다시 모인 이날, 단순한 팔순잔치가 아니라 한 세대의 삶의 증언이자 인생사 합창의 무대가 열렸다.
▶ 모임의 주역 세 사람
○ 공동체를 세운 기둥 나종호- 큰 바위 같은 리더십
나종호 회장은 동창회의 기둥이었다. 언제나 큰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중심을 지키며, 동창 모임의 자리를 마련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리더십은 권위적이지 않았다. 늘 웃음과 포용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았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번 팔순잔치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집념과 헌신 덕분이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부인이 함께했다. 동창회에 헌신하는 그의 곁에서 기꺼이 내조하며, 부부가 함께 만들어온 동창의 추억은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과 감탄을 자아냈다. 동창들은 그를 가리켜 “큰 바위”라 불렀다. 흔들리지 않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 나천수 - 인생 마라톤의 주자
나천수는 평생을 마라톤처럼 달려온 사람이었다. 일터에서, 삶에서, 그리고 동창회에서 그는 언제나 끝까지 달려가는 끈기의 표상이었다. 그의 시 “인생 마라톤”은 곧 그의 삶을 대변한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열정으로 가득하다. 회의 준비든, 행사 기획이든, 사소한 일에도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동창들에게 감동을 준다. 동창 모임에서 그는 늘 분위기를 띄우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에게 힘을 주는 든든한 동행자였다. 이번 팔순잔치 또한 그의 땀방울이 묻어 있기에 더 뜻깊었다.
○ 김중민 - 암투병을 넘어선 인간 승리
김중민의 이야기는 이번 모임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2000년 폐에 암세포가 발견되었을 때, 의사는 남은 시간을 3년으로 단정 지었다. 그러나 중민은 굴하지 않았다. “암세포와 한번 겨뤄 보자”는 각오로 식단을 바꾸고 몸을 다스리며 투병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그를 살린 것은 동창들과의 만남이었다. 해마다 이어진 동창회, 함께 웃고 노래하며 유년의 ‘너’와 ‘나’로 돌아가던 순간, 그 자리에서 솟아난 엔돌핀이 그의 생명을 붙잡았다. 그렇게 시한부 선고를 훌쩍 넘어섰고,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다. 2019년 4월 모임에서 그는 유서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을 준비한 기록이 아니라, 삶을 끝까지 긍정하고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다짐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우정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산 증언이었다.
▶ 아름다운 친구들의 이야기
팔순잔치의 무대는 곧 삶의 서사시였다.
춤추는 김현호 부부의 흥겨움, 최동현·박화주 부부의 멋과 맛, 이권중 부부의 천생연분, 고세평의 개척 정신, 김득수의 소나무 같은 삶, 서효숙의 ‘나주 배꽃 아씨’ 이야기, 이정순 부부의 해당화 인생, 김옥순의 “절망은 없다” 드라마, 황희영의 호접몽…. 이름만 불러도 추억이 되살아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함께 써 내려간 인생 소설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나종호·나천수·김중민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 팔순의 의미와 나아갈 길
이번 합동 팔순잔치는 단순한 생일잔치가 아니었다. 한 세대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쌓아온 우정과 동행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이제 망구(望九)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팔순은 끝이 아니다. 여전히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농사를 짓고, 봉사하며,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우리 세대가 지켜온 우정과 삶의 태도는 후세에게 나비효과처럼 작은 울림이 되어 퍼져나갈 것이다.
▶ 인생 최고의 보람
“아이 좋아라!”로 시작한 합동 팔순잔치는 결국 “고맙다, 감사하다”로 끝났다. 소년·소녀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여든의 나이에 다시 모여 웃으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보람이다.
그리고 이 보람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세 사람, 큰 바위 같은 리더십의 나종호, 인생 마라톤의 주자 나천수, 암투병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김중민이었다. 이들의 헌신과 용기가 있었기에 합동 팔순잔치는 유래 없는 기록으로 남았다. 별이 되어 떠나는 날까지, 우리는 이 우정을 품고 살아가리라. 이번 잔치는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인생을 노래하는 마지막 합창이자 우리 모두가 남긴 역사적 기록이었다.
끝으로 오늘 이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우정의 역사는 친구 최동현(총무)이 모아 놓은 자료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에 감사의 마음을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