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눈<210>
다양한 사회단체, 무엇을 위한 조직인가
전라남도 나주시를 포함한 각종 사회단체들이 시민사회의 중추 역할보다 행정의 하청 기구 혹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공동체 회복과 시민참여 확대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들이 정작 그 본래 취지를 잃고, 관 주도의 형식적 운영과 내부 기득권화의 온상으로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주시청에 등록된 사회단체 100여 개의 최근 3년간 활동 내역과 예산 수혜 현황 검토와 주요 관계자 및 전현직 단체 임원, 시민단체 감시 활동가 등을 인터뷰하여 나주시 사회단체 운영의 실태와 개선 과제를 조명해 본다.
▶ ‘시에서 뭐 해주라 해야 하지’… 관(官)에 종속된 단체 운영
"자체적으로 기획하거나 지역 이슈를 발굴해서 움직이는 단체요? 많지 않죠. 시에서 공모사업 내려오면 거기 맞춰 계획 짜고, 예산 받아서 실행하는 식입니다." 나주시 모 복지단체의 간부가 밝힌 이 한 마디는 현 실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다수의 단체가 나주시의 연례 공모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매년 동일한 틀로 제출하며, 행사 이름만 바뀐 ‘노인 나들이’, ‘밑반찬 나눔’, ‘환경 캠페인’ 등의 활동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이 주민의 욕구나 지역 변화와는 무관한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데 있다.
▶ ‘같은 일을 여럿이 하는’ 중복단체
보조금을 받기 위한 유령단체나 유사단체의 난립설도 심각하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8곳에 가까운 ‘청소년 육성’ 표방한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중 실질적 활동은 그중 몇군데에 집중되어 있다는 설이다. 나머지는 1년에 1~2회 회의나 간담회를 열고 사업비를 집행하는 데 그치는 형편이다.
▶ 정치는 중립, 그러나 현실은 편향
지역정치와 결탁된 단체 운영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한 단체는 지방선거 직전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성 성명을 발표하고, 자발적 참여라는 명목으로 선거운동에 동참했다. 해당 단체는 여전히 시의 보조금 수혜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단체장 다수가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특정 정당 행사에 단체 이름으로 참가하는 등 사회적 신뢰를 훼손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문화하고, 정치행위와 공익활동을 분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 ‘청년은 없다’… 장기집권과 세대 단절
청년과 여성의 사회참여를 이끈다는 명분과 달리, 나주시 사회단체는 여전히 기성세대 중심의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일부 단체는 10년 이상 동일 인물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총회나 집행부 구성에서도 젊은 층은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지역대학을 졸업한 C씨는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단체에 문의했더니, 활동 경력이 짧다는 이유로 참여자체도 힘들었"며 “단체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고 토로했다.
▶ 예산은 타지만 효과는 적다
실적보고서를 보면 ‘○○천 정화활동’, ‘쓰레기 줍기 캠페인’, ‘건강 걷기 행사’ 등이 빼곡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10여 명이 1시간 정도 모여 행사 사진을 찍고 해산하는 경우도 많다. 이마저도 반복되는 사진과 간략한 문구로 보고서를 제출해 형식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다반사다. D환경단체는 2023년 활동 보고서에 4차례의 하천 정화활동을 명기했으나,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같은 장소, 같은 인물, 같은 도구로 의심됐다.
문제는 이런 활동에 세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회계나 성과에 대한 감시 체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감사보고서가 제출되지 않거나, 특정 분야 예산 등이 과다하게 몰린 사례도 지적되고 있다.
▶ 사회단체, 진짜 시민을 위한 조직이 되려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사회단체 활동 평가제도 강화 ▲유사단체 통합 유도 ▲회계공개 의무화 ▲청년·여성 참여 확대 ▲정치중립성 제도화 등의 대책을 제안한다.
특히 나주시는 단체별 자율성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성과중심형 지원체계’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행정이 주도하는 지원이 아닌, 시민 스스로 의제를 발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조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단체는 지역사회 변화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보조금에만 기대어 정치의 그림자에 갇히고, 청년을 배제하는 운영 구조가 계속된다면 시민의 신뢰도는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나주시는 지금, ‘진짜 공익’을 위한 근본적 점검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