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눈<209>
개산(開山)으로서의 나주 가야산에 대한 제언
영산강 변 태초의 열린 땅을 찾아서 새로운 문화 공간 구성을 기대한다
2025년 7월 1일 새벽 5시, 나는 나주의 가야산, 아니 개산(開山)에 올랐다. 동녘에 해가 솟기 직전, 천지가 숨을 고르는 순간, 나는 그곳에서 일출을 기다렸고, 이내 깨달았다. 이곳은 단지 해가 뜨는 가야산곳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개산’, 곧 ‘열린 산’이라는 의미를 공감하고 싶어 글을 올려본다.
흔히들 가야산 정상을 “지구상에서 일출·일몰·월출·월몰을 모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말이 과장된 주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개산 정상에 서보면 그 말이 단지 허풍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방으로 트인 조망, 특히 서쪽으로는 영산강 유역과 황해가, 동쪽으로는 무등산 자락이, 남으로는 지리산 능선까지 아우르며 대지를 휘감고 있다. 이는 단지 경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산이 품은 시원과 상징의 문제다.
문순태 작가의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 전9권 어디에서도 ‘가야산’이라는 명칭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개산’이란 이름이 산재해 있다. 실제로 작가는 오랜 취재 끝에 “이 산을 동네 사람들은 개산이라 불렀지만, 그 뜻은 확실치 않다”고 회상했다. ‘산의 형상이 개처럼 생겨서’라는 민간설도 있으나, 그보다는 “복날 개고기 추렴을 하던 곳”이라는 일화나, 혹은 보다 심층적인 문화코드의 잔재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도 지역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개'(開) 지명들이다. 화순의 개천산과 개천사, 여수의 낭도·사도·개도 등은 모두 ‘개’로 시작되며, 이들은 단순한 지명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한자 ‘開’는 열 개(開), 곧 ‘열림’을 뜻한다. 열린 산, 열린 물길, 열린 섬. 이것은 단지 공간이 트였다는 지리적 의미가 아니다. 신화와 역사, 정신과 문화가 열렸던 성소의 자리일 가능성에 주목하게 한다.
고조선의 시조 단군이 천제를 지낸 신시(神市)가 처음 열린 곳은 어딘가? 삼국유사에는 태백산(太白山)으로, 해석에 따라 백두산이라도 하지만, 구전과 민속 전통 속에서는 남쪽으로 내려온 시조 신앙의 중심지가 따로 존재했다. 곧, 마한의 소도(蘇塗), 제사와 하늘을 잇는 성소의 중심이자, 개천절의 원형인 ‘하늘이 열린 자리’다. 이 맥락에서 나주의 개산은 단순한 산의 이름이 아니라, 태초의 ‘개천 開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Open the Heaven, Open the Sea, Open the Heart’ - 이 단순한 문장이 함의하는 메시지는 바로 그 옛 신앙과도 닿아 있다. 열린다는 것은 닫힘에 대한 대척점이며, 막힘 없는 소통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인간과 자연, 하늘과 땅, 신성과 속세 사이의 통로. 이러한 개념은 ‘산’이라는 매개 속에서 신성화되었고, 나주 개산은 그러한 신령한 통로의 중심지로 기능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주는 고대 금성(金城)으로 불렸다. 금(錦)은 비단이 아니라 ‘빛나는 성’이란 상징이다. 발라족의 흔적, 마한의 중심, 영산강 문명의 요람, 그리고 수많은 전설과 설화가 교차하는 이 도시가 품은 산. 그 산의 이름이 단지 자연물로서의 ‘가야산’이 아니라, 열린 역사의 시원이자 성소로서의 ‘개산’이라면, 이는 단지 명칭의 문제가 아니다. 나주의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깊은 상징의 문제다.
끝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야산’은 행정지도상 명칭일 뿐이다. 그 이름 이전에, 수천 년간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 원형이 ‘개산(開山)’이라는 이름 속에 살아 있다면, 우리는 단순한 고증을 넘어서 민족의 시원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 기억을 되살려야 할 때다. 역사는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불리던 이름 속에도 흐르고 있다. 그 이름, 개산 하늘이 열린 땅으로 나주에서 다시 불러야 할 이름이라는 것을 공감하고 개발을 위해 나주시에 의견을 올려본다.
<나주시에 드리는 제언>
1. 개산 정상을 전세계적인 일출 일몰 월출 월몰 명소로 만들기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
2. 나주일출12경을 선정 - 금성산 정년봉, 장원봉, 월정봉, 반남 자미산, 공산 구수봉, 남평 월현대산, 산포 식산, 다도 덕룡산, 다시 백룡산, 노안 복룡산, 다시 석관정, 동강 느러지
3. 개산정상의 전망대데크를 전국 공통의 짝뚱 합성목이 아닌 원목으로 옛스럽게 개선
4. 사진작가들의 수십년 민원인 큰나무 몇그루 제거를 통한 사진프레임 완성
5. 영산강정원과 개산까지 오고가는 길, 예를들면 뚝방길, 옛길, 고샅길 등 깨끗하게 정비해서 나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정감있는 마을 조성을 제안하는 나주학회 정녕봉문학반(최미성 동신대교수)과 타오르는강 독서모임(홍은영 홍어의꿈 아기홍어핑크퐁당 대표) 등 전문가들의 공동 연구를 통한 스토리텔링과 안내앱 개발
6. 들섬, 동섬처럼 만봉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일몰명소로 조성하기 위한 합수부에 징검다리 재 설치(일제시대 때는 있었는데 1960년대 초에 없앴다는 설이 전해짐)
글 : 진화(眞和 ) 홍 양 현 (洪良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