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의 선택이 타인의 인생을 파괴한 비극
칼 로저스는 “인간의 고통은 숨겨질 때 폭탄이 되고, 공유될 때 다리가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금 우리의 삶과 사회가 직면한 고통의 실체를 꿰뚫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 절망은 때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나며, 그로 인해 또 다른 이의 삶을 산산이 부수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 7일, 경기도 광주시의 한 번화가 한복판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는 단순한 자살 시도로 보기엔 너무나 무겁고 깊은 울림을 남겼다. 10대 여성이 상가 건물 옥상에서 추락해 길을 지나던 모녀와 60대 남성을 덮쳤고, 그 결과 여성은 현장에서 숨졌으며, 함께 있던 아이와 행인 모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갑자기 끊긴 사람들. 누군가의 삶이 끝나는 그 순간, 또 다른 삶도 깊은 고통 속으로 추락했다.
이는 정신적 고통에 무감각한 사회의 결과가 만들어내 비극이다. 우리는 이런 사건 앞에서 무력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비극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얼마나 민감했는가?”, “당신은 누군가의 절망을 외면하지 않았는가?”라고. 이 사회는 여전히 정신건강을 개인의 약점으로 치부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가볍게 넘긴다. 외로운 사람은 더욱 외로워지고, 고통 받는 이의 고통은 점점 깊어지며 결국은 사회 전체를 무너뜨리는 비극으로 되돌아온다. ‘희생된 아이, 남겨진 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그날 거리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한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다. 병원을 다녀오던 한 어머니와 어린 딸은 아무 잘못도 없이 길을 걷다가 삶이 산산조각 났다. 어린 딸은 끝내 숨졌고, 어머니는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이 사건은, 누군가의 절망이 또 다른 삶을 짓밟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참혹한 예시다. 마치 무거운 돌 하나가 평온한 호수에 떨어져 돌이킬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킨 것처럼, 절망의 무게는 타인의 평범한 하루를 집어삼켜버린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누구도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누가 그녀를 그 옥상으로 몰았는가? 왜 우리는 그 소녀의 비명을 미리 듣지 못했는가? 아마도 그녀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그 신호를 듣지 못했거나, 들었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정신질환은 결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가정과 학교, 사회 전체의 거울이며, 그 안에 무너진 돌봄과 연결, 공감의 부재가 고스란히 비친다. 치료받을 수 있었던 시간, 손 내밀 수 있었던 기회, 그리고 껴안을 수 있었던 마음이 있었다면 이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개인의 일’로 치부하며 고개를 돌리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신건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그 위기를 방치할 경우 사회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위기징후를 감지하고, 적절한 개입이 가능한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정서적 돌봄이 학업만큼이나 중요하고, 가정에서는 아이의 말없는 눈빛에도 반응해야 하며, 사회는 고통을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더 이상 ‘죽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모두의 고통에 조금 더 다가가야 한다. 그녀의 마지막 발걸음이 만든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그 무게를 우리 모두가 나누어 져야 한다. 그래야만 절망은 또 다른 절망을 낳지 않고, 고통은 누군가를 향한 다리가 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외면한 고통이 내일 우리를 향하지 않도록, 이제는 사회 전체가 함께 눈을 뜨고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