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남들은 모두가 하늘을 우러러 꽃을 피우려 애가 타는데 당신은 어쩌다 하늘을 피하려는 듯 허리 굽혀 꽃을 피우는가? 겨우내 숨어 지내다 봄을 알리려 바람이 불어오니 오랜 기지개로 내민 얼굴, 나름은 하늘 보기가 수줍은 민망함인가? 아니면 다들 저 잘났다 뽐내려 할 때 스스로를 낮추고 마음에 겸손을 둠에 있던가? 굽어진 그 아래로 검적색으로 꽃잎을 열고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당신의 모습에서 겸허를 보게 된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아직 열매를 맺지는 않았지만 꽃 피움에서부터 허리를 숙여 자기를 겸손하여 스스로 자중하려 함이 가이 가상스럽도다. 깊은 산속 양지바른 곳, 이름없는 어느 산소 옆에 꽃샘추위를 이겨내며 고고한 자태로 피어나니, 그 누구의 눈길은 없더라도 그 할머니가 그토록 찾던 작은손녀 기다림을 꽃으로 피운 애닯음마저 애써 감추려고 시샘바람에도 의연하더이다.
옛날 어느 깊고 외진 산골에서 두 손녀를 데리고 살고있는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부지런히 일을 하며 어렵게 두 손녀를 키웠다. 큰손녀는 얼굴이 예뻤지만 마음씨는 고약하기 그지 없었고 작은 손녀는 마음은 착하지만 외모는 그리 예쁜 편이 아니었다. 두 손녀를 걱정하던 할머니는 "얘들아, 이제 너희도 나이가 찼으니 좋은 데가 있으면 얼른 시집을 가야지." 큰 손녀는 '네, 할머니!'하고 대답을 했고, 작은 손녀는 “전 시집가지 않고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오래 살겠어요.” 할머니는 작은손녀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동네의 부잣집에서 중매쟁이를 보내 와 "저! 이 집에 예쁜 처녀가 둘씩이나 있다기에 중매하러 왔어요." 할머니는 "이 애가 제 큰손녀입니다." 하여 큰손녀는 예쁜 미모 덕분에 부자 댁에 시집보낼 수 있었고, 작은손녀는 먼데 사는 성실한 산지기에게 시집가던 날,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몸 건강히 계세요." 그렇게 두 손녀가 떠난 후 세월이 흘러가니 할머니도 이제는 늙고 병까지 들어 도저히 혼자서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이웃 동네의 큰손녀를 찾아가자, 처음에는 할머니를 반갑게 맞아 주었으나 열흘 정도 지나자 할머니가 자기에게 얹혀살러 온 것을 알고는 푸대접을 하기 시작하여 할머니만 보면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그 구박에 눈치를 느끼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는 큰손녀 몰래 집을 빠져나와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오래 살겠다고 하던 작은손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은손녀의 집이 있는 높은 산꼭대기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고개를 올라가는데 찬바람이 몹시 불어 춥고 숨이 차서 한 발짝도 더 걸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할머니는 그만 고갯마루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작은손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작은손녀는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언덕 쪽으로 내려오곤 했는데, 그 곳에서는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그리워 집을 나섰던 작은손녀는 언덕 위에서 죽은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시신을 수습하고 울면서 양지바른 곳에 장사지냈다. 그러자 다음 해 봄, 그 무덤가에는 ‘꽃’ 한 송이가 마치 사랑하는 손녀를 보지 못하고 늙고 병들어 살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피어났다. 그 꽃을 본 사람들은 훗날 이를 할미꽃이라 부르고 그녀의 넋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이것을 할미꽃 전설이라 하더라
할미꽃을 보고 있노라니 어려서 키워주신 할머니의 애틋한 얼굴이 떠오르며 눈에 어른거리며 코끝이 찡하더니 이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할미꽃은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아도 연두빛 줄기를 굽혀 피어있는 연약한 모습이 애처럽고 애잖하잖니? 그러나 찬바람을 이겨내며 꿋꿋이 터뜨리는 꽃망울이 작은손녀가 그리워하는 그 할머니의 서글픈 인생을 보는 것 같다. 옛적도 그러하였지만,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은혜를 모르는 자식들이 있는 것은 왜 일까? 그것은 교육이 잘못되었다라든가, 나쁜 사회적 환경 등에서 받은 영향이 아니라 자기가 항상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인성’ 때문인 것이다. 인성이란 교육으로도 안되고 오직 자기 스스로 깨달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인성이 나쁜 이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 모습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은 잠언 23:22을 통하여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하여 일깨움을 주려하고, 속담은 ‘개구리 올챙이적 모른다’고 했던 것인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