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눈<205>
벼 재배 면적 감축 정책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쌀값 안정, WTO 재협상이 답이다
▶ 벼 재배면적 강제 감축,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정부는 벼 재배면적을 줄이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대신, 각 지방자치단체에 감축 목표를 할당하고, 마치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강제적인 면적 축소다. 농업인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은 채, 지자체를 통해 압박하는 방식이다.
벼 재배면적이 줄어들면 쌀 생산 농가의 소득 감소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에 대한 보완 대책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재배를 줄이면 쌀값이 오를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만 앞세울 뿐, 정작 농민들의 생계는 외면하고 있다. 농가 보고 풀 뜯어 먹고 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쌀값 불안정의 원인이 단순한 공급 과잉 때문이라면,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매년 쌀 생산량과 소비량이 함께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WTO 의무수입량은 고정된 상태다. 이로 인해 국내 소비와 상관없이 매년 40만7천 톤의 수입쌀이 들어오면서 구조적인 공급 과잉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벼 재배면적을 강제로 줄이는 것이 과연 답이 될까? 쌀값을 안정시키려면 의무수입량 조정과 같은 구조적 대책이 먼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WTO 재협상 같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미룬 채, 농민들에게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
벼 재배면적 강제 감축은 쌀값 안정은커녕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식량주권마저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다. 국내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나면, 결국 수입쌀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식량 안보를 정부 스스로 위협하는 행위다.
정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농업인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정책은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수입량 조정과 소비 촉진을 통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강제 감축을 즉각 중단하고, 농민과 함께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 쌀값 안정, WTO 재협상이 답이다
올해도 쌀값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과잉 공급이 주된 원인이다. 문제는 구조적이다.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공급량은 여전히 많다. 특히, 국내 생산량 외에 WTO 의무수입량이 고정된 채 유지되고 있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 협정 체결 당시,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대신 일정량의 의무수입을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그 결과, 2015년부터 매년 40만7,800톤의 쌀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전체 소비량의 9%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연간 쌀 소비량은 약 279만 톤에 불과하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의무수입량은 약 25만 톤 수준이 적정하다. 그러나 기존 협정에 따라 40만7천 톤이 강제적으로 수입되면서 약 15만 톤이 초과 공급되는 실정이다. 줄어든 소비를 반영하지 못한 채, 30년 가까이 고정된 협정이 현재의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쌀값 안정은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가격 하락이 지속되면 농민들의 경영이 악화될 뿐 아니라, 국내 생산 기반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쌀 산업이 붕괴되면 우리 식량 안보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WTO 재협상이 필요하다. 협상이 쉽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나라들도 있다. 일본은 쌀 소비 감소에 따라 국내 생산을 조절하고 있으며, 중국은 전략적 비축을 통해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우리도 더 이상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농업계·전문가들과 협력해 의무수입량 조정 문제를 국제 사회에 공론화하고, 단계적 감축을 위한 전략적 협상에 나서야 한다. 수입량 조정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국내 소비 촉진과 비축 확대 등 다각적인 대책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안정은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다. 우리 농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문제다.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WTO 협정이 체결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정부는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