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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나주토픽

무엇을 위하려 하였던가?

  • 입력 2025.03.21 04:34
  • 수정 2025.03.24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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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하려 하였던가?

 

조영만(수의사)

   나라가 이념 대결에서 남북으로 갈리더니, 지역 이기주의의 산물로 동서로 갈려 갈등하고 있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못해 지지 성향에 따라 좌우로 갈라져 이전투구하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그냥 보고 있자니 심히 염려스럽고 혼란스럽다. k-팝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국격이 아주 크게 성장하여 여행 유튜브를 보면 세계 어느 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From Korea!’라고 하면 소위 MZ 세대까지도 다 반겨주고 관심을 가져주면서 한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는 이런 마당에, 정작 그 당사자인 우리는 극과 극으로 대치한 채 자기만 주장이 옳다고 한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옛적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는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고전 수필 조침문(弔針文)이 생각나 다시 음미해보고 싶어 적어본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神)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시삼촌이 북경에서 사다 준 바늘 한쌈으로 바느질하다 부러진 바늘을 애닯어 하며 쓴 글인데, 여기에서 유씨부인은 바늘이 부녀자에게 매우 중요한 물건인데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을 먼저 애통해하였다.

   이는 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인데도 이 국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있음을 의미함과 같지 않느냐? 지금 현실이 꼭 그러하더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국민이 아깝고 불쌍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한밤중 거의 대부분이 잠들어 있을 때 기습적으로 저지른 미친 짓거리 때문에 지금 이러한 거 아니냐? 경제가 파탄지경이고 국민 생활이 피폐해질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그 작자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보여줘 울화가 치민다. 반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여줌이 없다. 아녀자가 한낱 미물에 속하는 바늘 하나가 잘못됨에도 이렇듯 애닯어 하는데,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람이 5천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 생사의 기로에서 사(死)되지 않으려고 발버둥만을 치고 있음이 안타깝도다. 더군다나 이러한 상황을 즐기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되지도 않은 지지자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고 있지는 않을까? 구치소에서 풀려난 이후에 보여준 그의 파렴치한 행보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탄핵이라는 결과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살리는 기각인 양 착각하고 12.3 이전의 자기로 돌아가는 것처럼 오판을 하고 있음을, 비장하게 다문 그 입술에서 읽을 수가 있더라. 그리고는 거기 운집한 태극기부대라는 지지자들에게 폴더 인사를 3번 하더라, 그렇지만 전부는 아니더라도 247천표차로 자기를 믿고 더 선택해준 그 일부 국민들에게라도 송구한 마음이 있어야 함이 인간의 도리이거늘 그에게서는 이미 마음 없음이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그는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일을 저질러 이렇게 나라를 혼돈속으로 빠뜨리더냐? 그런데 타까운 것은 거기서 그가 내세운 명분이란 궤변을 국민 대다수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성토하고 있음에, 자기 정당화를 위하여 탓을 남에게로 돌리고 말고 자기 성찰에서 마음을 크게 비울 때가 탄핵 전 지금일 것이다. 때란 것은 늦으면 회복이 불능이니라. 그리고 모든 것 사라지면, 그러면 후회만 있더라.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1881년 1월28일 아내 안나가 읽어준 마태복음 3:2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를 들으면서 밤 8시 30분 60세로 파란만장한 이승의 끈을 놓더라. 오늘이 슬프도다. 그러나 마음을 곧추잡고 마태복음 3:2절 말씀을 다시 인용하면 “회개하라 탄핵이 가까웠느니라”를 보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솔된 눈물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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