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서서 ...
서산에 지는 해는 내일 새벽이 있어 저물어짐을 슬퍼하지 않고, 떨어지는 낙엽은 내년 또 봄이 있기에 떨어짐을 슬퍼하지 않지만, 자꾸만 짧아지는 우리의 인생에서 기대어 볼 무엇도 없음이 느꼈졌을 때 자신도 모를 아쉬움이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유난히도 무더웠던 더위에 소나기가 더해지더니, 가을 제철에서 피우지 못하고 철 지난 상사화가 그렇게도 피우고 싶었던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그 자태가 또한 매우 도도하더라. 동맥혈보다 더 빨간 실타래 꽃잎이 내 눈속으로 들어와 감탄을 자아내더니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안고 지고 있구나. 그건 변화이니 거기에 기대어 살았음을 의미하고, 삶의 윤회일지니 꽃이 사그라짐에도 꽃잎을 그리워하나 만나지 못함을 슬퍼하지 아니하는구나.
이것을 생의 굴레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굴레에 얽혀 이제는 그 끝자락에서 방향을 잃어가는 인생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노년의 아름다움은 성숙이요 성숙이라 함은 깨달음이요, 거기엔 지혜를 만나는 길이리라. 학문은 배우고 익히면 될 것이나 연륜은 반드시 밥그룻을 비워내야 한다. 그러기에 나이는 거저 먹는 것이 아니지요.
손이 커도 베풀 줄 모르면 미덕의 수치요, 발이 넓어도 머무를 것이 없다면 부덕의 소치라는 것을 ..., 지식이 겸손함을 모르면 무식만 못하고, 높음이 낮춤을 모르면 존경받기 어렵다는 것을 ...,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네가 나로 하여 무거운 것임을 ..., 세월이 나를 쓸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하여 외로운 것임을 ..., 사람의 멋이란 인생의 맛이란 걸 깨닫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것을 황혼에 서서야 이제사 그 앎음이 쪼끔 생겨남은 연륜이 쌓였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내려 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굳이 추억을 끄집어 내어 미련을 만들지 마라. 그건 다 부도난 수표이다.
그래서 과거로 되돌아 가려 하지 마라. 오늘오늘 살아가는 것이 자꾸만 짧아져가는 인생의 시간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것을 잊지 말거라. 지금까지 27,000일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았든 그것은 너의 흔적이리니, 그것은 지워지지 않으리니 그냥 그대로 두고 얼마일지 모르는 날들을 위하여 그냥 가거라. 그게 외롭지 않은 인생길 일게다
어둠이 와 눈을 감으면 죽음이란 것과 같다고 새삼 느껴지다가도 아침이 와 눈을 뜨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되는 것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자 했던 오늘에 발붙이고 서 있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많아지니 너무나 많은 제약이 하루하루 다르게 몸에서 일어나니 누군가 ‘인생이란 움직여 행동할 수 있을 때까지라’고 그 말이 섬뜩하게 떠오른다. 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먹으려 해도 먹을 수가 없고, 가려해도 갈 수가 없어지게 되고, 생각하려해도 생각이 없어져가는 육체의 목마름에 더욱 더 나약해져가는 마음에서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 자꾸만 좁아지고 없어져 간다. 이것이 인생의 나약함일일까?
간절함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엄청난 경쟁에서 희망으로 태어나 인생이란 걸음으로 남겨진 흔적들은 존재라는 의미를 잃어버려 그대로 묻혀져 버릴지라도 그래도 태양은 매일매일 다시 떠오르고 지구는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 돌아간다. 이 세상은 나라는 존재만이 없어졌을 뿐 역사는 또 역사를 만들며 흘러 갈 것이다
지금 가을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착잡함만 마음에 그득하더니 답답하구나.
이것을 인생의 끝자락이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