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훔친 눈물
나는 내 시(詩)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빳빳한 수표가 아니라 손때 꼬깃한 지폐, 청소부 아저씨의 땀에 절은 남방호주머니로 비치는 깻잎 같은 만원권 한 장의 푸르름 나는 내 시에서 간직하면 좋겠다.
어느 시인이 힘없이 읊조린 싯귀가 입가에 의미 있는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오늘 밤은 왠지 깊어가는 밤이 두렵다.
어느 때련가! 영산포 선창가에 홀로 서 있는 등대를 향해 천년전 왕건이 흔들었던 개국의 깃발을 기다리느냐, 아니면 호남을 평정할 백마 타고 올 부활의 깃발을 기다리느냐, 소리치던 너인데, 흐르는 세월 속에 이제는 지치고 지쳐 선창가 주막거리에서 걸쭉한 홍어애국에 텁텁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흥얼거리며 어쩔 수 없어 그저 그냥 보통사람으로 적당히 살아가려고 타협을 서두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늘 날 퍼런 기백을 간직하며 청년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고 또 남고 싶다던 너도 이제는 말없이 흔한 범부(凡夫)의 길로 접어든단 말이더냐.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그리도 많은 일들을 조용히 접어두고 어디론가 도망치듯 떠나고 싶다는 말이더냐.
농사짓던 강화도령은 왕이란다. 조광조가 어떻고…. 아리랑 주인공 김산이 어떻고…. 연해주 자유시가 어떻고…. 간도국민회가, 대한독립군이 어떻고…. 나주공동체가 어떻고…. 큰 바위 얼굴이 어떻다고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 대던 네가 아니더냐.
적어도 야비하고 비겁한 뒷모습을 보이는 삶은 살아서는 안 된다고, 깨끗하고 참신한 나주의 자존심으로 남아야 한다고 그리도 큰 소리 치더니 오늘 밤이 왠지 무섭고 두렵게만 느껴진단 말이냐.
일어탁수(一魚濁水)라, 한 마리 물고기가 온 강물을 흐린다고 야단들이고, 주낙을 놓을 사람이 없다는데, 그냥 버리고 떠나려 서두르고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는데, 그 메아리들이 지치고 힘든 너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한다고 제발 환청이었으면 하느냐.
황표정사(黃標政事)라, 왕이 너무 어려 아는 것이 없으니 막후(幕後)에서 결재 할 서류에 황색 점을 찍어 표시하면 왕은 점 위에 낙점을 찍어 결재한다는 말인데, 저잣거리 아낙네들이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고 하는 말인지 재잘거리는 세상사가 안타깝기만 하구나. 언젠가 기쁜 소식으로 박수를 보낼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빌어본다.
농촌이 고령화되고 구도심권 공동화에 따른 침체의 늪에 빠지면 한 지역 내에서도 경쟁에 지쳐 좌절하고 의지 할 곳 없는 시민들로 불균형 사회가 도래할 경우가 불문가지인데, 이기주의(利己主義)를 버리고 이타주의(利他主義)의 상생의 정신을 진작해 공동체 사회로 결속시키는 새로운 가치관을 만든다는 절규에 저절로 두 손이 쥐어지는 것은 또한 어쩌란 말이냐. 노블리즈 오블리제가 보편적 가치가 되고 든든한 문화로 정착될 날은 언제일까.
삶이 있는 세상사에 아무도 울지 않던 밤이 없다하지 않았더냐. 밤은 좌절한 사내들이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시간이란다. 삶은 언제나 전쟁이고 별은 아득히 멀어 세상의 밤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기 마련이련다.
오늘 밤이 왠지 무섭고 두렵게만 느껴진다. 재앙(災殃)이 아닌 희망으로 가득할 판도라의 상자는 아직 열리지 않았으리라. 새벽닭이라도 빨리 울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