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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산림경영의 달인 강 희식 전 나주산림조합 조합장

  • 입력 2021.10.21 23:36
  • 수정 2021.10.2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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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업계의 선각자, 산림경영의 달인 강 희식 전 나주산림조합 조합장

3선 13.2년 재직기간 흑자경영과 기업화 성장으로 전국에 명성을 떨친 나주의 거인

 
 

  ‘숲이 우거진 나라는 선진국, 헐벗은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전문가의 주장은 거의 사실에 가깝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산림 보호를 위하여 여러 가지 정책들을 펴 왔다. 조선시대 때에는 금산, 봉산이라 하여 일정 지역 산림에는 입산을 금지하였고 송계를 조직하여 지역 단위의 산림 보호 도모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한말 사회가 혼란해 지면서 산림이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일제의 목재 수탈과 6·25동란을 거치면서 산림황폐의 정도는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황폐된 산지 복구를 위한 산림법과 사방사업법을 제정하는 등 법적, 제도적 장치로 사방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전국의 모든 산림이 나무로 가득 차게 되어 ‘국토녹화의 금자탑’이라는 위대한 성취를 이룩하게 되었으며 국제기구(FAO)로부터 짧은 기간에 녹화를 성공한 국가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 과정에는 1962년 설립한 대한산림조합연합회(특수법인)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나주 산립조합 역시 1949년 해방 후 나주군산림조합 조직(사단법인)으로 출발하여 산림 녹화에 몫을 다했으며, 1989년 산림조합법 개정으로 조합장이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개편되며 14년 동안 조합장으로 연이은 무투표 당선과 함께 전임 전년 흑자 운영으로 전국에 명성을 떨친 경영의 달인이 나주의 명예를 드높였다.

주인공은 바로 내리 3연임의 강희식 전 나주산림조합장(이후 강 조합장)이다. 보훈의 달인 6월 나주토픽에서는 강 조합장의 업적을 기리며 글을 올려본다.

▶ 특별한 재능을 지닌 경제 달인, 조촐한 산림조합을 기업으로 이끌어

강 조합장은 ‘소탐대실의 정신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라는 인생 철학을 가슴에 담고 때를 활용하여 뜻을 이루고, 이치를 역행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지혜로움으로 성공을 끌어내며 전국에 명성을 떨친 나주의 큰 인재이다. 또한, 강 조합장은 그만이 발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재능이 남긴 채취로 지도자의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별한 재능의 첫 번째는 어떤 역경에 닥쳐도  자기의 미래는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는 굽히지 않는 신념으로 결코, 동요하지 않고 끈기 있게 파고들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다. 두 번째, 부정적 사고의  악순환을 과감히 끊는 결단력을 가진 인물이다. 세 번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매사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머릿속에 강한  성공의 이미지를 그리며 저돌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추진력을 가졌다. 이러한 그의 특별한 재능은 13년 2개월의 산림조합장 재직시절 산림사업을 단순 차원을 넘은 금융사업·목재사업을 미래지향적으로 수용한 종합경영 철학자 · 산림경영의 선각자로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한,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틀에서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그리고 임업의 경쟁력 증진과 조합원 소득증대 및 산림조합조직의 활성화와 임업경영의 내실화 과제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만년 적자 나주산림조합을 13.2년 연속 흑자경영 기록을 만들어낸 사실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빼어난 기록이고, 뛰어난 경제 감각으로 경영 능력을 발휘한 경제 달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는 수많은 덕담과 표창으로 이어졌다. 27세에 산림업에 몸을 담고 2004년 임업 후계자를 시작으로 2006년 나주시산림조합장으로 취임 이후 정부 시책인 산림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산림자원화조성에 크게 공헌한 공로로 2013년 5월 19일 대통령 표창을 정점으로 수여 받은 후 전라남도지자상, 나주시장상 등 많은 수상 경력은 강 조합장의 역량을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 고향 다도 지역민의 감사 뜻이 가득 담긴 덕룡산 일봉암의 강 전 조합장 공로비는 항상 감회를 새롭게 한다. 강 조합장의 노력으로 개설된 임도가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의 가슴 깊이 새겨지며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선각자 명문 가정 일궈 내

1957년 다도면에서 부친 강덕용 선생과 모친 정성애 여사의 2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강 전 조합장의 가정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강 전 조합장이 8세의 어린 나이에 부친께서 유명을 달리하면서 5남매를 책임지며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모친의 자녀에 대한 깊은 사랑은 아직도 5남매 가슴속 깊이 새겨져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강 조합장은 청소년 시절부터 항상 희망이라는 싹을 키우며 살았다. 그 희망은 바로 ‘부자로 성공해 지역에 봉사하는 큰 인물이 되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해 도전장을 내민 분야는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묘목 육성 사업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장을 내민 통 큰 도전은 근면·성실함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강 조합장의 섬세함으로 ‘무에서 유’의 성공을 이뤘다.

27세의 나이에 산림업에 몸을 담게 되면서 성공한 임업가로 성장하게 되었고 고수익을 창출하여 임업인 모두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경영기법 노하우를 축적하게 되면서 강조합장은 비로소 임업의 미래 비전을 설계·추진하는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4년 41세에 당당한 임업 후계자로 출발, 2006년 나주산림조합장 당선으로 강 조합장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펼치는 기회, 나주산림조합은 부흥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 소규모의 산림조합 기업으로 성장시켜 경영 달인으로 불려

강 조합장은 3선의 당선(2회 무투표 당선)으로 나주산림조합을 경영하는 13.2년 동안 경영불모지 산림조합에 산림경영지도를 강화하고 대리경영 제도를 통한 산림경영 기술상담, 산림경영 현지지도, 행정업무대행, 산림지 보급 등 산주 및 조합원의 소득증대와 산림경영 의식 고취를 통한 선진 산림경영기술 보급에 전력을 기울였다. 2000년도에 만들어진 목재집하장을 목재관리 중심센터로 자리 잡게 했고, 산림조합특화사업자로 선정되어 목재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모든 생산시설을 설치, 완료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강 조합장의 임기 동안 수많은 업적 중 기업으로 성장한 산림조합은 지역에서 성장한 임업계 선구자이자 경제 달인의 손으로 이뤘고, 나주시 지역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강 조합장의 취임 후 13.2년 재임 동안의 흑자경영과 조합원으로부터 신뢰받는 조합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봉사쟁이 눈물쟁이 조합장

2019년 3선의 철인만으로 알려졌지만 의외로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눈물을 잘 흘리는 인정 듬뿍한 눈물쟁이다. 오랜 근무 동안 단 한 명도 강제 사직한 일이 없었고, 동고동락했던 직원과의 희로애락 나눔과 사소한 일에도 눈물을 흘렸던 사실 또한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33세에 늦은 나이에 지인의 소개로 결혼해 6년의 시골 단칸방 생활, 남평읍 50만 원의 사글세로 시작한 신혼 시절 힘들었지만 두 손 꼭 잡고 행복을 다짐하며 성공을 이뤄낸 강 조합장은 영원한 동반자 이광숙 여사와 잉꼬부부 모범가장이었고, 모친의 지극한 사랑에 눈물을 아끼지 않는 애처가이자 효자이다.

그리고 첫 조합장 출마 당시 반대했던 사랑하는 아내가 출근길 건네준 쪽 편지 ‘사랑합니다. 당신이 선택한 길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조건없는 사랑에 고마운 마음을 눈시울에 담아 감사의 뜻을 전했다.

특히, 강 조합장은 퇴임전은 물론 최근까지도 봉사의 손길을 놓지 않는 수많은 기부 경력 그리고 후배들에게도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라’라는 교훈과 행동하는 양심은 사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금 강 조합장은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시간을 축적하며 도약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강 조합장이 축적하고 있는 수많은 경험이 사회에 기여되는 도움의 시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부단한 도전에 존경하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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