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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신비의 황토 도자기 주인공 충주산방 충주(忠主) 노근진(盧瑾鎭) 도예 명인

  • 입력 2021.03.13 02:03
  • 수정 2021.03.1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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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황토 도자기 주인공 충주산방 충주(忠主) 노근진(盧瑾鎭) 도예 명인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인생철학과 천재적 재능으로 빚어진 충주산방 나주의 보물로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문화 도시 나주시는 하늘, 땅, 바다가 잉태한 젖줄 광활한 나주평야 바탕 위에 혁신도시가 들어서며 호남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는 상업 도시로 전환했고 광야 위에 세워지는 수많은 공단이 들어서며 농공상이 함께 발전하는 미래형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나주시가 문화 도시로 꾸준히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로 칭하는 ‘예향 나주’의 자부심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추정할 수 있으며, 한글 학자 신숙주 선생, 천재 시인 백호 임제 선생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고, 새로운 인물이 꾸준히 성장하며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감동 속에 나주토픽 166호에서는 불모에 가까운 황토 문화를 소재로 전국 곳곳 유명작가의 가르침을 찾아 독창적이고 탁월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창조 정신으로 도예 문화를 창조하며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해외 각국에 커다란 명성을 떨치고 있는 충주산방(忠主山房) 방주(房主) 충주(忠主) 노근진(盧瑾鎭) 명인(이하 노 명인)을 찾아 글을 올려본다.

  ▶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 창조자의 길을 걷는다.

  우리나라 황토 도자기의 최고 권위자로 정평이 나 있는 도예 분야 노 명인은 나주 공산면에 있는 충주산방에서 37년간 도예 공예 활동에 정진해오며 전통방식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서각, 도판각 분야에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하며 독보적인 도예 장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노 명인은 항상 부족함의 겸손한 마음으로 최고를 추구하는 마음 다짐으로 미래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나주 황토만이 갖는 아름다운 면목의 부활과 가치 창조를 위한 그의 노력은 감탄과 더불어 나주인의 정신에 담아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또한, 꿈의 터전 충주산방 운영과 끊임없는 작품활동 그리고 후학 양성의 마인드와 시스템은 노 명인이 명품도시 나주시의 보물단지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노 명인 존재의 가치와 도약의 가능성은 그의 화려한 경력과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84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부산 대전 대구 광주 나주 목포에서 개인작품발표회 12회, 뉴욕 LA 시 애 틀 등 해외 전시 4회를 가졌으며, 지난 20여 년 동안 충주산방 도예체험 교실 운영, 매년 600여 명의 도자기 체험생을 배출하는 등 후진 양성에 앞장서 온 선각자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재 충주 도예연구소를 운영하는 忠主山房 대표이자(사)전남도예협회이사장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나주예총 감사 등 폭넓은 활동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회원, 나주미술협회 나주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편, 지난 2017년 한국예술문화 도예 부문 명인의 영예를 얻었고, 이어서 2019년 12월에는 도예 분야에서 나주시 첫 명장의 영예를 획득하며 최고 권위자의 지위도 공인을 받았다.

  ▶ 예술로 승화된 노 명인의 품위와 일상

  공산면 중포리가 고향인 노 명인은 타고난 예술인이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강진군 병영면 외가 마을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서당에 한문을 배우고 서예 공부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남다른 소질을 간파한 이규황 선생님의 운명적인 만남과 선택으로 충주(忠主)라는 아호(雅號)를 받았고 호남지역 유명작가로 활동하는 영광도 가졌다.

당시 20년 동안 서예작가로 활동하며 6회에 걸친 서예작품 전시회로 대성공 경험도 가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자기에 글을 써넣는 입체작업을 하다가 1980년 어느 날 특별한 영감을 얻게 되고 도예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변신에 대한 강력한 유혹은 운명의 전환을 의미했기에 상당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저 없이 ‘도예공예 문화’ 선택에 과감히 영혼과 육신을 던졌다. 도자기 제작 수업을 시작과 유명 선생님들의 장·단점 꿰뚫고 스스로 기존방식의 터득과 신개념의 도자기 문화를 접속시켰다. ‘옛것을 존중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접목해 미래를 창조한다’라는 ‘도예공학 문화(철학)’의 완성은 현재 충주산방에 자리 잡게 되었고 전국 10명도 채 안 되는 ‘도예공예 명인’ 그리고 나주 최초의 ‘도예공예 명장(명인)’으로 우뚝서며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타고난 천재적 재능을 지닌 명인의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도예 분야 데뷔 후 노 명인은 1984년 작품전시를 시작해 2020년까지 전국 곳곳 12회의 개인전과 해외 전시 4회를 가졌고 작품전시회마다 그의 작품활동은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왔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영혼이 담긴 그의 작품은 신문화 창조의 길잡이가 되었다. 사랑과 영혼 그리고 그의 생활터전이 모두 작품 속에 담아지며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예술로 승화되었다

지금 노 명인의 황토 도자기 작품은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노 명인의 혼이 담긴 충주산방은 이미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알려졌고, 걸음마를 벗어난 미소년·소녀부터 멋들어진 백발노인까지 모두가 즐겨 찾고 경험하는 체험학습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노 명인이 개발한 원적외선 황토 마늘구이기를 비롯한 각종 작품은 상품화되어 전남 수출산업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고도의 전문 지식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창조적ㆍ모험적 경영을 전개하는 벤처기업인으로 성장도 기대된다.

황토로 만들어진 제품들은 인체에 이롭다는 것이 잘 알려진 내용이다. 우리 것을 살려보자는 노 명인이 지난 92년 고향인 나주에 설립 후 자신이 만든 작품 황토 도자기에 황토 채취부터 제작, 품질관리까지 열정적인 노력과 장인정신을 가득 담았다. 그래서 충주산방의 황토 도자기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또한, 노 명인의 작품 즉 시상품이나 기념품인 황토 도자기가 고가치 상품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고급스럽고 실생활에서 직접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노 명인의 작품은 전국 5대 유명백화점과 광주의 전라남도 농어촌특산품 전시매장에서만 구경할 수 있었고, 미국과 일본에서도 인기몰이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에 따라 부가가치를 인정한 나주시는 지난 95년 지역특산품 9호로 지정해 지금은 내수와 수출 등에 주력하는 성공신화도 만들었다.

  ▶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인생 철학 성공신화로 이어져

  노 명인의 성공 또한 결코 우연은 없었다. 한때 좌절마저도 고민해야 했던 고통의 IMF 수난을 겪었지만 ‘안되면 되게 하라!’라는 인생 철학으로 극복하며 단, 한 시간의 헛된 시간 보냄 없이 열정을 쏟아부었던 시간은 현재 400여 평의 작업장과전시장, 3대의 가마에서 황토 다기 세트, 황토 밥공기 세트 등 35여 가지의 생활도자기와 분청사기 등 황토 도자기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가 흘렸던 피와 땀으로 범벅된 온몸 그리고 아낌없이 향토도자기에 담았던 그의 영혼이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노 명인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라고 생각하면서도 ‘행복하다’라는 밝은 미소와 함께 가슴에 담은 힘들었던 일 모두 잊고 평생 뒷바라지에 단, 한가지라도 아낌없이 내주었던 사랑하는 부인 김정희 여사와 함께 보람을 공유하며 미소 속에 담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지금 노 명인은 후학 양성과 함께 도전하는 신인들을 향해 항상 ‘은근과 끈기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예술에 몰입하는 장인정신을 강력히 권유하며 도예공예의 발전을 갈망한다. “도예의 관념을 물레로 성형한 입체적 작품으로 보고, 서예는 화선지에 붓을 이용한 평면예술을 전개해 간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편견을 넘어 도예의 평면화와 서예의 입체적 서각이 흙과 유약 그리고 불의 융합작용으로 평면과 입체에 대한 새로운 비전”으로 충주 노근진 명인만의 도예 세계를 창조해 만들어진 성공신화는 그를 추종하는 롤모델임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주에서 20분 거리에 자리 잡은 충주산방의 방주 노 명인 부부는 가끔 잘 성장한 두 아들 관련 담소와 함께 미래를 그려본다. 특히, 노명인의 재능을 이어받은 서울미대 재학 중인 늦동이 둘째 아들이 ‘노솔세라믹’라는 네이버 쇼핑 사이트를 운영하며 자신의 작품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둘째 아들을 향한 은근한 전수 기대가 엿보이기도 한다. 부인과 함께 이룩한 꿈의 성지이자 후학들이 영원히 가슴에 담을 마음의 고향 그리고 도전의 성지가 되어 세계를 지향하는 나주의 자랑거리로 발전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보자.                                                            <나주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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