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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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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0  04: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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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음

 

 

   

            수의사 조  영  만

한설장학재단 이사장

죽음(死亡, death)은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은 살아 있는 유기체를 유지하는 모든 생물학적 기능의 중지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거나 (살인), 스스로 죽거나 (자살), 혹은 법에 의해 정해진 형벌(사형)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가장 주요한 사망 원인은 노화, 질병, 사고이다. 그러면 삶이 끝나는 죽음은 생명체 즉 인간에게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가해보면

 첫째, 죽음은 완전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주위에서 어떠한 도움이 있을지라도, 심지어는 감정적으로 함께 죽고자 하여도 절대로 함께 죽을 수 없는 순전히 개인적 행위라는 점이다. 옛날 순장제도가 있었지만 이것은 사후의 일일 뿐, 그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다.

  둘째,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이며 절대평등의 이치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천기누설로 언제 어디서 자기가 죽는 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때가 되자 그는 거기를 가야할 상황이지만 가지 않기로 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죽음이 말하기를 ‘거기를 가기로 하였으나 갑자기 다른 급한 일이 생겨 그곳으로 가기로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그 사람은 거기에서 죽었다. 또 하나의 일화는 사주를 보니 몇 날 몇 시에 물에 빠져 죽는다고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그는 그날이 되자 물가에 가지 않기 위하여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였다. 그 시간이 지나자 그의 안위가 궁금하여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 사람은 죽어 있었다. 방에는 물이 없었는데 어떻게 죽었을까 하고 보니 접시에 물 수(水)를 써 놓고 코를 박고 죽어 있었다 한다.

  셋째, 죽음은 단 한번 뿐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두 번이 없다, 단 한번 뿐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지 3일 만에 부활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넷째, 죽음은 종교와는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영국 기독교 신문 크리스천투데이의 칼럼니스트 앨래나 프랜시스는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죽음 이후 약속된 삶을 보장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생을 약속받았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죽음은 실제로 영생으로 인도하며, 죽음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여정에서 중요한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불교의 목표는 열반, 즉 해탈이다. 이것은 윤회의 수레바퀴로부터 벗어남을 말한다. 여섯 세계로의 윤회를 그치는 것, 그것이 최종 목적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되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죽음은 삶의 연장이자 결과물이기 때문이다‘라고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의 의미라 말하고 있다. 인간은 창조되면서부터 영원히 살 수 없을까 하는 염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 - 역사상 진시황 단 한 사람만 이를 가장 절실하게 깨달았다 .

 이 사후 삶에 대한 종교적 개념으로 확대되면서 -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생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사상이 생겨나게 되지 않았을까? 누구도 경험하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하는 사후의 결과를 동경하게 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죽음 이후의 약속된 삶으로 믿어지도록 함으로서 종교로서의 존재 가치를 창출하였지 않았을까? 만일 종교가 죽음을 응용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떠한 결과가 있었을까?

 요양원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근근히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할머니가 ‘나는 이 좋은 세상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억압된 세상에서만 살다가 지금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어 참 편한데 왜 빨리 죽어 ...’라고 말씀하신단다. 우리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간절하게 더 살기를 원했던 오늘도 살아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그래서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을까 ... 이것을 나이 탓이라고 하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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