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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처럼 버리고 장량처럼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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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6  01: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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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처럼 버리고 장량처럼 떠나라

부재 : 한신처럼 죽지 말고...

 

   
한설장학회 이사장 조 영 만
동물은 집단을 이루다 보면 반드시 서열을 정하게 된다
. 그렇지 않으면 질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움을 하는 것은 아직 서열이 정하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꿈을 꾸는 이 서열은 전쟁이나 정변이라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거쳐야만 했다. 그때마다 거기에는 반드시 참모가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훌륭한 인재를 참모로 통솔했던 자는 1인자가 되었으나 그러하지 아니한 자는 역사에서 소멸되어야만 했다. 그 대표적인 영웅이 바로 역발산 기개세라 칭송을 받았던 77승의 항우일 것이다. 그는 범증이라는 훌륭한 인재를 얻고도 유방에게 패하여 스스로 패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참모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한 결과였다.

 그러면 역사가 상 가장 위대한 2인자를 꼽을 수 있는 인재는 누구였을까? 아마 누구나 제갈량과 장량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욕심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아닐까?

  촉나라 명재상이었던 공명은 유비가 죽으면서 자기의 뒤를 이어 왕이 되라 하였지만 끝내 거절하고 장자인 유선을 왕으로 모시고 성심을 다해 받들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50대의 젊은 나이에 중달과의 세 겨루기 도중 유선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오장원에서 죽었다. 성도에 뽕나무 800그루가 있고 메마른 땅 16(:중국단위 약 100a)이 있으니 자제들이 입고 먹기에는 넉넉합니다. 신이 밖에서 임무를 받들 때에는 따로 조달할 것이 없이 제 한 몸의 먹고 입는 것은 모두 관부에 의지했으므로 따로 생활의 방도를 차리게 하여 적은 양을 보태지는 않았습니다. 신이 죽었을 때 여분의 비단이나 밖으로 남은 재산이 있어 폐하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죽은 후 공명의 사유 재산을 조사한 결과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뽕나무가 심어진 자갈밭 5,000평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당시 중원을 3분했던 촉나라의 만인지상 일인지하인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서의 재산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땅을 남겼던 것이다.

성경 야고보서 제115절 말씀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악을 낳고, 죄악이 장성한즉 죽음을 낳느니라라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만일 공명이 유비의 유언대로 왕이 되는 욕심을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공명의 위대함은 없어졌을 거라 감이 추정해 본다. 공명이 마음에서 욕심을 비웠기에 그가 더 위대해지는 것이리라

  다음으로 장량을 보자. 장자방이라 불리웠던 장량은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한신, 소하, 조참과 더불어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하통일을 이룬 한고조 유방이 낙양 남궁에서 잔치를 베풀면서 말했다. “경들은 숨김없이 말하시오.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과 항우가 나에게 패배한 까닭을 말이오.” 그러자 고기와 왕릉이 말했다. “폐하께선 성을 치고 공략한 후에는 공을 세운 사람에게 그 땅을 주어 천하 사람들과 이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의심과 질투가 많아 싸움에 이겼어도 성을 주지 않았고 땅을 얻어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폐하가 천하를 얻게 된 이유인 줄 압니다.”

 그러자 유방은 이렇게 말했다. “경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대체로 나라는 사람은, 계획을 세워 장막 안에서 움직여 천 리 밖의 승리를 얻게 하는 데는 장량만 못하고(夫運籌帷幄之中,決勝於千里之外,吾不如張良), 나라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어루만져주며 군대에 보급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 데는 내가 소하만 못하며(鎭國家撫百姓,給餽饟不絶糧道,吾不如蕭何),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치면 반드시 빼앗는 것은 한신보다 못하오(運百萬之軍,戰必勝功必取,吾不如韓信). 그러나 내가 장량과 한신, 소하와 같은 참모와 용장을 잘 통솔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소. 이것이 내가 천하를 차지한 이유요. 반면 항우 밑에는 범증이란 인재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쓰지 못했소. 이것이 나에게 패한 이유요.” 이렇듯 유방의 장량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유방에게서 떠났다. 후세 사람들이 그 이유를 말하길 하나는 장량이 당시 공신들이 주살 당하는 것을 보고 매우 낙심하여 스스로 관직을 내놓고 유방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운산(白雲山)으로 도를 배우러 떠났다고 하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유방이 태자 유영을 싫어하여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앉히려고 했다. 대신들은 간절히 간언했으나 유방의 뜻을 바꿀 수 없었다. 장량도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유방이 따르지 않자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유방에게 표를 올려 자신의 뜻을 전한다.

 “(중략) 장량은 이제 세치밖에 안 되는 저의 혀로 임금의 스승이 돼 일만 호에 봉해지고 열후가 되니, 가난하여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서민으로써는 극치를 이룬 것으로써 장량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더 바라고 있는 것은 인간사를 모두 버리고 적송자(赤松子)를 좇아 노닐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표연히 떠나가 종적을 알 길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반면 장량은 이런 좌절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적인 모사로 여겨진다. 자방이 유명하다는 것은 삼국지에서 조조가 순욱을 '나의 자방'이라 칭한 일이며, 당태종 역시 위징을 장자방에 비견하는 등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공을 세운 참모나 정치가를 '나의 장자방'이라고 칭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이태조는 정도전을, 세조에게는 그 유명한 한명회를 '나의 자방'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모사로 이름난 인물은 많지만, 대부분 제대로 된 주인을 못 만나거나, 계책이 어그러져 자신 또는 주군을 망치거나, 끝내 대업을 이루지 못하거나, 대업을 이룬 뒤 숙청당하는 등 그 끝이 좋지 않았다.  한신도 마찬가지로 괴철의 천하삼분론에 속아 망설이다가 여태후에게 죽임을 당한 대표적 사례였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배워야 할 것이다. 하나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업을 이루었으면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참모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단정을 지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선거가 끝나면 자기 앞에 곶감을 큰 거 놓으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강하게 말하고 싶다

 ‘떠나라! 그것이 진리를 사는 길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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