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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남도 지방의 양반 주택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 문화재 나주 홍기헌 가옥(羅州洪起憲家屋)

  • 입력 2015.09.18 17:12
  • 수정 2015.09.18 17:13
  • 댓글 0

바로잡습니다.
본지 43호(9월 3일 자) 12면(문화)에 게재되었던 나주 홍기응가옥 내용 중 풍산 홍 씨가 남양 홍 씨로 잘못 게재되어 바로 잡습니다. H민족문화대백과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하여 전통명문가 풍산 홍씨에 누를 끼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또한 잘못 기록된 내용은 홍대영(풍산 홍씨 수연다원)씨의 강력한 수정 건의를 통해 H민족문화대백과에 정정(訂正)되어 바로잡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선 후기 남도 지방의 양반 주택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 문화재 나주 홍기헌 가옥(羅州洪起憲家屋)

풍산 홍씨 집성촌 도래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 같아

지정종목 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165호
명칭 : 나주홍기헌가옥
지정일:1984년 1월 14일
분류:가옥
시대:조선시대
소재지: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 사랑채
▲ 홍기헌 가옥 안채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래(도천)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통 가옥으로 남도의 주택문화를 대표하는 도래마을은 마을의 맥이 세 갈래로 나뉘어 내 ‘천(川)’ 자 모양을 이룬다 하여 ‘도천’이라고 했던 것을 다시 도래마을로 바꿔 부르고 있다. 조선 중종 때 홍한의가 기묘사화를 피해 낙향한 뒤 정착하면서 풍산 홍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아담한 마을이지만 조선시대 전통 한옥의 멋을 간직한 집들이 많아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 같다.
마을 입구에 방문자센터가 손님을 맞고, 그 바로 옆에 편히 올라가 앉을 수 있는 영호정이 자리한다. 맞은편 양벽정은 기품 있는 누마루 천장 아래 시인묵객이 남긴 시가 가득 걸려 있다. 원래 이 자리가 아니라 화순군 화포에 홍장이라는 사람이 지은 정자다. 양산보, 정철, 최시망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하던 곳인데, 현대에 들어 퇴락한 것을 후손이 마을 입구에 옮겨 지었다. 마을 사람들의 합동세배 장소이자 ‘도래의 날’ 행사 장소로 쓰인다.도래마을옛집은 도래마을 안에 있는 19세기 가옥으로 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매입해 옛 모습 그대로 복원, 유지하고 있는 집이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개방하고 일요일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홍기헌 가옥 외에 나주 홍기응 가옥(중요민속자료 151), 나주 홍기창 가옥(전라남도민속자료 9), 나주 홍기종 가옥(전라남도민속자료 10)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양반가의 대표적인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살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남도 지방의 주택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문화재다.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은 서향이며 전체적으로 직선을 축으로 배치되어 있다. 중심 맨 안쪽에 안채가 있고 안채 앞쪽에 북쪽으로 곳간채가 있으며 안채의 중앙에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가 있다. 사랑마당 앞에 대문채를 두어서 안마당으로 출입하려면 사랑채의 남쪽 측면을 지나게 된다. 안마당 양옆에는 돼지우리와 잿간이 있으며 담장은 자연지세대로 둘러져 있다. 사랑채공간과 안공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으나 사랑채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구분되도록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는 당시에 호화주택으로 법에 위반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집으로 옛날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안채는 6칸 전후우퇴로 왼쪽 2칸을 부엌으로 하고 전면 모퇴는 부엌방을 만들었다. 다음은 큰방이며 중앙 2칸은 대청이다. 대청 윗간 뒷퇴에는 고방을 배치했으며 다음이 작업방인데 뒷퇴에 작은 부엌을 두었다. 구조는 2고주 5량이며 전면 툇마루기둥은 두리기둥으로 되었다. 덤벙주초에 막돌 허튼층쌓기 기단이며 합각지붕이다.
사랑채는 원래 3칸 전후좌우툇집으로 꾸몄으며 대청을 한쪽으로 시설한 남도방식의 건축이다. 왼쪽으로부터 부엌, 다음은 앞간의 광, 뒤가 부뚜막이며 중앙은 사랑 아랫방과 대청, 뒤에는 고방(庫房)을 배열하였다. 앞퇴와 우퇴에는 툇마루가 놓이고 대청은 정면과 측면을 터놓았다. 구조는 2고주 5량이다. 기둥머리 위에 주두를 얹고 대들보를 받았으며 보아지를 끼웠는데 쇠서없이 당초무늬를 새겼다. 또한 헛첨차를 끼워서 양끝에 소로를 놓고 장혀를 받쳤다. 도리는 굴도리이며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네모기둥에 높은 덤벙주초이며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지붕은 합각으로 처리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고 고졸한 느낌을 준다. 대문채는 5칸 겹집구조로서 오른쪽으로부터 대문간 2칸, 광, 헛간, 잿간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근래에 이루어졌다.
이 주택이 위치한 도천 마을은 풍산홍씨의 동성마을로 마을 전체의 경관 구조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 공동 정자와 연못 등이 있고 정자 입구의 2층 효자문은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도천 마을은 고려시대에 남평문씨들이 형성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조선 세조 때 한성우윤 최거가 들어와 살았으며 중종 때 풍산홍씨 홍한의가 기묘사화의 화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풍산홍씨 동족마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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