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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나주토픽

누구의 군대 이야기

  • 입력 2023.06.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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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군대 이야기

   조영만(수의사)
   조영만(수의사)

  1972년 12월 26일 오후 2시 대전 공군항공병학교 연병장에서는 공군 제230기 신병 입교식이 있었다. 우리들 모두는 10과목이라는 필기시험이라는 과정을 통과하여 모인 낯설은 얼굴들이다. 물론 그때는 예비 소집기간이 있어 1주일을 공짜로 군 생활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전역 후 세어보니 36개월 6일을 군 생활을 하고서 1975년 12월 31일 전역하고 집에 돌아 오니 햇수로 5년이 되었다. 1976년 1월 1일 새벽 4시에 송정리 역에서 택시로 집에 오니 그렇게 된 셈이다. 그런데 나중에 공무원이 되어 군복무기간 호봉 산정에서 예비소집 6일이 1개월로 산정되어 호봉에 반영되는 세옹지마같은 일이 되었다.

  신병 훈련을 마치고 ‘요격관제’ 주특기를 받고 5주간의 특기 교육을 마친 후 5월 강원도 화천 이승만대통령이 이 산을 빼앗기고 5번을 울었다 하는 오성산이 보이는, 이 고지를 김일성이 빼앗기고 대성통곡하였다는 대성산에서 미군 철수 자리 뒷정리를 위하여 5명 동기들과 파견되어 1개월을 지냈다. 그때 미군이 남기고 간 세탁기도, 세탁건조기도 처음 보았다. 대성산 근무를 마치고 오산 공군 제30사단 헌병대에 배속되어 군생활을 하는데 그때는 의무적으로 1~3개월을 자대 헌병대에서 경비업부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었다. 오산에서 근무를 마치고 제주로 발령을 받고 대기중에 가황 나훈아씨가 들어왔다. 그는 공군 제235기로 5기수 졸병이었다. 이때 오산은 난리가 났다. 3개월의 복무를 마치고 드디어 C54 수송기를 타고 제주로 날라갔다. 모슬포 공군 제307대대에서 신고를 마치고 나니 기수 복이 좋은 줄을 알았다. 위로는 단기하사 1명 그리고 제218기, 226기 고참 2명뿐이었다. 내무반 청소를 1개월 하고 나니 후임병들이 월 3~4명이 들어오는데 졸병생활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우리는 4개 crew로 나누어 1일 4교대 3일 근무를 하고 1박 2일 외출을 나갈 수가 있는 본업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는 이 이야기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이발을 하기 위하여 영내에 있는 이발소에 갔다. 거기에는 우리 부대가 영외 교회에서 운영하는 중학과정 야간학교 3학년 학생이 종사하고 있었는데 그 학생이 손에 피부병이 있어 면도를 못한다고 하는데 마침 행정계 선임하사가 이발을 하고 면도를 못하고 있어 선뜻 나서서 면도를 잘한다고 허풍을 치고는 면도를 해 주었는데 그는 정말 만족하였다. 실은 그때가 면도기를 잡아 본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면도를 할 있었을까? 화순 고향 동네에서 죽마고우가 이발을 하고 있어 면도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오는데 대대장님이 부르신단다. 그래서 대대장실에 가니까 앉으라고 하더니 지금 이발소에 근무하는 아이가 졸업을 하게 되면서 자기도 더 큰 제주시로 나가고 싶다고 한단다. 그러면 이발소가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 거기를 메울 후임은 언제 올지 모른다. 공군의 입대 학력이 최소 고졸 이상이라 이발병 지원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이발병만 학력 제한을 없앴다고 백령도에서 잠깐 이발을 하게 되면서 온 후임에게 들었다. 무조건 하라고 말씀하시길래 ‘명령입니까?’하고 묻고는 하기로 하였다. 드디어 이발은 시작 되었다. 가위를 잡는 것부터 배우면서 실제 현장수업으로 이발을 시작하였는데 어려울 것 같은 이발 기술이 아니었다. 이발은 ‘빗을 예술’이라고 표현하게 되었다. 그것은 빗 위로 올라오는 머리카락만 자르면 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이 되자 다 배웠으니 아이를 보내라고 하였다. 그래서 혼자 이발하게 되는 첫날 군산상고 출신 이억만 하사가 이발을 하러 왔다. 의자에 앉히고 가운을 두르고 이발은 시작되었다. 오른쪽은 잘 깎았는데, 왼쪽을 깎으려니 왼쪽 귀 위로 올라온 머리카락이 매우 거추장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점간 망설이는데 그때 문득 스치는 생각은 가위의 틈이 없으므로 그냥 귀 위에다 대고 자르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 그대로 가위를 움직였더니 싹뚝하는 소리를 들으는 것 같아 가위를 보니 위에 귀의 살점이 한점 올려져 있었다. 이 하사의 귀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순간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지혈을 한 후 이발을 마쳤으나 1시간도 못되어 부대내에 널리 소문이 났다.

이후로 이발소는 한동안 발길이 끊겼다. 이때부터 별명이 돌팔이 깎사가 되었으며, 이 일이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전역 후 바로 ‘미용’을 시작하는 일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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