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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나주토픽

주는 것을 먼저 배우자

  • 입력 2023.05.0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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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을 먼저 배우자

 

        조영만(수의사)
        조영만(수의사)

 ‘주는 것이 얻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의 요체니라라고 고대 중국 제나라의 제상이었던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이 한 말이다. 성경 마태복음 5:40~44절까지 누가 너를 고소하고 속옷을 가져가려 하거든 겉옷까지도 벗어 주어라.’ ‘누가 네게 억지로 1밀리온을 가자고 하거든 2밀리온을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거절하지 마라.’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또 마태복음 7:12절에는 그러므로 모든 일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를 황금율이라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이 황금율을 잘 실천한 홍순언이라는 역관이 있었다

 

그는 명종 때 사신을 수행해 명나라에 가 수도 연경의 홍등가를 구경하다 한 기방 앞에 하룻밤 자는데 은자 1천 냥이라고 쓰여 있는 안내문을 보았다. 어떤 기녀이길래 1천냥이나 불러? 하고는 그 기녀를 불렀다. 사연인 즉 저의 부친이 억울하게 죄를 지어, 은자 1천 냥이 있어야 구명이 됩니다. 부친을 살리기 위해 제 몸을 팔 수밖에 없습니다.”고 했다. 류씨라고만 알려진 그 여인의 기품에 감동되어 그는 흔쾌히 은자 1천 냥을 변제하여 주자 굳이 성함을 알려달라고 하기에 그는 억지로 홍역관이라고만 말하였다

세월이 흘러 선조가 임금이 되었고 1584년 주청사를 보내면서 200년 동안 해묵은 종계변무(宗系辨誣)를 반드시 해결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종계변무란 명나라 태조실록’(太祖實錄)대명회전’(大明會典)에 태조 이성계가 당시 정치적으로 반대파였던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잘못 기록된 것을 수정하려 한 일이다. 개국 이후 10여 차례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했으나 해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명나라에서 홍역관을 찾는다는 소문을 들은 다른 역관들 때문에 이 사절단으로 홍순언은 참여하였다. 사절단이 연경에 도착하자 명나라 예부상서 석성(石星)이 조선사절단의 역관을 찾았다. 얘기인즉, 홍순언이 돌보아준 여인이 석성의 후처가 되어 있었고, 류씨 부인은 남편에게 홍역관에게 은혜를 갚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석성을 만난 자리에서 종계변무 일로 왔다고 설명하고 해결을 부탁했다. 그러자 석성은 그의 부탁을 쾌히 들어주었고, 이로써 200년 끌어오던 골칫거리를 해결하게 되었다. 선조는 크게 기뻐해 중인 신분이었던 홍순언을 당성군(唐城君)에 책봉했다. 역관으로는 최초로 공신 작호를 받은 것이다. 이후 명나라로부터 홍순언의 한양 집에 비단짐이 도착했는데, 이 비단에 보은(報恩)이란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고 한다. 석성의 부인이 한 땀 한 땀 비단에 글자를 수놓아서 조선으로 보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공짜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맛없는 것은 내가 내 돈내고 남 사주면서 먹는 것이요. 두 번째로 맛있는 것은 외상으로 먹는 것이요. 가장 맛있는 것은 공짜로 얻어 먹는 것이다. 그러나 공짜 뒤에는 얻은 것에 대한 부담이 항상 마음을 괴롭힌다. 그런데 그것은 가끔은 뇌물이 되거나 부정부패가 되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그러한즉 공짜 얻기를 즐거이 하기 전에 먼저 주는 것을 해보라. 그러면 받는 쾌감보다 더 주는 즐거움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크게 활짝 웃고 있을 것이다. 삶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고, 인생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기가 예쁜 것은 내가 아기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기 때문이며, 아내가 예쁜 것도 아내에게 무언가를 줄 것이 있기 때문이고 또 부모가 웃는 것은 내게 줄 것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부호들이 거액의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주어지고 있다는 자기만족 때문일 것이다.

 

주자 10회훈에 보면 불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라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으면 가고 난 뒤 후회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주는 표현일 것이다. 주는 것을 아까워 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도,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꺼이 주어봄을 행동으로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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