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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토픽이 만난사람
  • 기자명 나주토픽

5월 어머니상 시상식 기념 사진

  • 입력 2023.04.17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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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토픽이 만난 사람<176>

시민운동의 대부 영원한 민중의 벗 고(故) 김병균 목사

민주화·통일운동가로 떠날 때까지 '남북화해 통일' 외친 의로운 시민운동가

 

                  5월 어머니상 시상식 기념 사진
                  5월 어머니상 시상식 기념 사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종교인을 들 수 있다. 요즘 사이비 종교인들이 난세의 중심에 서 있는 불행한 사례도 있지만 참 종교인이 존경의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고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뜻있는 종교인들은 약자를 돕는데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존경받는 이유이다. 이를 두고 사회적 강자인 권력층 그리고 재력가들은 종교인을 '정치적 목적을 가진 비판자'로 폄하하며 자신들을 정당화하는데 급급하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권력 아닌 시민을 위해 투쟁하는 종교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며 공감으로 보답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정치는 야망을 좇는 것이고, 종교는 야망을 내려놓는다는 상반된 관점'을 기억하며 그들을 재판단하는 시간도 가져봐야 한다. 본지 212호에서 한 종교인이 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평생을 바치다 소천한 사례를 게재하며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소개하는 글을 올려본다. 지난 3월 29일 소천한 고 김병균 목사(이후 김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례식 현장
                                                                장례식 현장

  ▶ 광주·전남 시민운동의 대부 김병균 목사

  김 목사는 1948년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에서 태어나 강진 중앙초, 광주서중, 광주 사례지오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호남신학대, 장로회신학대학원, 기장총회선교신학대학원, 나주대 사회복지과 등을 졸업하고 최근 만학으로 갈릴리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목회를 시작한 김 목사는 은퇴하는 이날까지 40년 동안 농촌목회자로서 선교활동을 했으며 고막원교회에서 23년을 시무했다.

민주 쟁취 국민운동 광주 전남본부 공동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 공동의장, 나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 상임대표, 6·15 공동실천 남측위 광주 공동의장, 6·15공동실천 남측위 전남 공동의장,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광주·전남 공동의장, 나주 촛불집회 상임대표 등을 역임하고 평통사 중앙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농촌, 통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예장통합전남노회 인권위원장,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장, 광주기독교교협회 회장(광주NCC),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 공동의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친 특별한 사회운동가이다. 그의 민주를 위한 투쟁 노력과 경력은 비교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뿐 아니라 광주·전남 나주를 중심으로 민주화 투쟁 현장에 빠지지 않는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1991년 5월 노태우 군사정권 퇴진을 외치다 경찰 곤봉을 맞고 사망한 명지대 학생 강경대 군의 하관 예배를 올리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1995년 11월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실행위원으로 통일운동에 나섰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97년 5월에는 정권 규탄 시위 중 사망한 조선대 류재을군에 대한 경찰 폭력에 항의하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2005년 5월에는 광주공항의 패트리엇 미사일 철거 투쟁을 하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반 독재 운동 현장에 그의 감성 깊은 연설과 호소력은 각별한 대우를 받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김 목사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와 그 이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 5·18 정신의 전국화·세계화에도 앞장섰으며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대변해왔다. 그는 1987년부터 1989년에 걸쳐 진행된 나주지역 수세 거부 운동을 주도했고 이후 전국으로 확대되어 수세 폐지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민주화 산 증인이자 열정적인 김 목사는 2018년 은퇴 뒤에도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나주본부 공동대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를 맡아 평화·통일 운동에 힘쓰는 등 몸을 아끼지 않았으며, 2018년 5월, 오월어머니회에서 주는 ‘오월 어머니상’과 같은 해 12월, 한국인권교육원이 주는 인권상을 받았다.

▶ “불의에 분노하라! 고통받는 민중들을 사랑하라!

  지난 3월 1일 오전 제104주년 삼일절을 맞아 전남 나주 독립운동가 김철 선생 묘소에서 일본의 사죄 촉구 활동을 하고 같은 날 오후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3·1 만세 행사를 한 뒤 폐렴 증세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폐렴 증세로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삼일절 행사에 참여했다가 폐렴이 악화해 투병하다 향년 75세로 영면했다. 유족으로 부인 진보애, 자녀 경윤, 유리, 유진씨가 있다.

김 목사가 떠나는 날 김정길 장례위원장은 "김 목사는 마지막까지 조국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라고 말하고 ‘폐렴 증세로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 결국 3월 1일 행사에서 추상같은 목소리로 현 정부를 질타하고 가셨다’라며 그를 추도했다.

2018년 은퇴 뒤에도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나주본부 공동대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공동대표를 맡아 평화·통일 운동에 힘썼던 김 목사는 저서‘새날을 위한 예언자의 소리’, ‘성경의 길이 보입니다’ 외에 박사논문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민중신학과 마르크시즘 및 주체사상 간의 대화’ 등에 불의에 분노하고 남기고 약자에 함께 아파하며 통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전했다. 김 목사의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정의 실천 운동’이 맥을 어어가며 후손들과 우리 사회에 전해지는 더 큰 기여를 기대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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