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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토픽이 만난사람
  • 기자명 나주토픽

‘배움엔 나이 없어’ 늦깎이 공붓벌레 나주고등학교 김명숙 학생

  • 입력 2022.05.27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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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엔 나이 없어’ 늦깎이 공붓벌레 나주고등학교 김명숙 학생

불치하문 만학도의 아름다운 도전 사회의 본보기 되어 나주의 자랑으로 비치길

                                  만학도  김명숙 학생
                                  만학도  김명숙 학생
                                                     여유를 즐기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
                                                     여유를 즐기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

 

2022년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선진국 지위를 얻은 영광을 갖게 된 뜻깊은 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40년대 이전 즉,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엄청 가난하고 못살았던 최저 빈곤 국가였다. 1897년: 7달러, 1898년: 5달러, 1899년: 8달러, 1900년: 9달러, 1901년: 7달러‘, 1902년: 10달러, 1910년: 11달러, 1920년: 20달러, 1950년 4월: 3000달러 달성,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1953년: 67달러 세계 꼴찌였던 기록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 "경제 고도 성장기"로 초고속경제 성장을 이루는 업적을 올렸고, 1인당국민소득이 엄청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특히, 80년대 이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월드컵을 성공으로 이끌만큼 국력은 신장했고 89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 7월 2일 선진국 진입이 공식 선언되는 영예를 얻었다. 1953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최저 빈곤 국가가 70년도 못 되어 한강의 기적의 명성과 함께 세계 34국만이 갖는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선 것이다.

이런 결과를 두고 세계의 석학들이 교육 발전주기를 30년으로 주장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높게 평가받아 왔다. 특히 미국의 34대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배우라는 충고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70년대 이전 우리나라 역시 많은 사람이 가난 때문에 초등교육마저도 받지 못하는 어두운 시절도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1960년대 말 중졸과 고졸의 자격을 부여해주는 검정고시를 실시했고 많은 국민이 혜택을 받게 되었고 심심찮게 늦깎이 대학 입학하는 사례가 소개되며 갈채를 받고 있다.

그리고 우리 나주시에는 아주 특별한 늦깎이 공붓벌레로 소개되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62세 고등학생이 있다. 주인공은 나주시에서 부부가 함께 관광업소를 운영하며 남다른 사업 철학으로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낸 나주고등학교 김명숙 학생(이하 김명숙 씨)이다. 나주토픽 193호에는 아주 특별한 김명숙 학생을 찾아 글을 올려본다.

▶ 불치하문(不恥下問)과 여고 3년생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뜻으로 자기가 모르는 부분은 누구에게든지 물어서 식견을 넓히라는 말이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불치하문’을 실천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아름다운 사람 나주고등학교 3학년 김명숙 학생은 나주고등학교는 물론 전라남도 교육사 특히 나주교육사에 새로운 화젯거리로 자리 잡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김명숙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배움을 포기하고 지금의 부군을 만나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 자식들을 가르치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해보기로 결심했는데, 그것은 바로 가슴에 깊이 담아둔 공부였다. 초등학교 이후 학창시절도 없었고, 공부하기 전에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 항상 가슴속에 남아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움츠려지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만약 내일 당장 종말이 맞이하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스러울까 생각해보니 공부를 못한 게 가장 한(恨)으로 남을 것 같아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가슴에 담긴 좌절보다 과감한 도전으로 자신을 극복한 본보기 사례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직접 반대하지 않았지만, 가족들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걱정이 앞선 모습이었지만 김명숙 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왜 다들 놀라지. 그 나이에 학교 다녀서 뭐하냐고?’라고 자문자답도 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처음에는 ‘주변 학생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학과 공부를 따라갈 수는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들, 딸뻘 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 덕분에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인생의 선배로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김명숙 씨는 대안학교 선택으로 좀 더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자아발견과 신세대 극복 도전의 목표 달성을 위해 58세에 중학교 입학 그리고 60세 고등학교 입학의 길을 걷고 싶었고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 도전 당시 부끄러움이 앞서기도 했었지만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이 오히려 자랑스럽기도 했다.

▶ 힘찬 도전정신 그리고 가족 사랑

김명숙 씨는 만학도로 보통의 학생들보다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다. 보통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 때문에 제 나이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보다 학업을 힘들게 느꼈다. 그리고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이웃 학생들에게 존중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어려웠지만, 사회에서 쌓은 연륜으로 수업 내용을 따라가며 공부했고 모든 방면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말 못 할 어려움도 많았지만, 김명숙 씨는 가족의 이해와 도움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인 양 주빈 사장과 가족이 더욱 자랑스럽다. 특히, 중·고등학교 재학 등하굣길 하루도 빠짐없이 몸소 지켜줬던 남편 그리고 고교 교사인 아들과 사업가인 딸의 조언은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김명숙 씨는 아직도 재학 중이지만 항상 어린 학우들에게 결코 ‘고령자 우대’를 바라지 않았다. 타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정당하게 성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신보다 어린 선생님도 있었지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선생님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처신했다.

김명숙 씨는 항상 ‘내가 좋아서 배우는 것, 어떤 요행이나 배려도 바라지 않아’라며 단호하게 말하는 정직한 여학생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항상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라고 다짐하며 나름대로 성공을 꿈꾼다. 검정고시나 대안학교를 포기하고 학생들과의 생활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년 2월 김명숙 씨의 두 손에는 졸업장과 꽃다발(또는 상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날 그녀가 희망하는 J 모 대학교 영문학과 입학허가증도 담기길 기대해본다. 또한, 자랑스런 나주인으로 존경받기를 바라는 마음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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