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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나주토픽

죽음 앞에서

  • 입력 2022.04.2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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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생명을 가진 생명체인가 보다

죽음이라는 굴레에서 헤어날 수가 없으니….

생명이 있다면 결코 비켜 갈 수 없는 숙명의 그 멍에이면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찰나의 시간, 그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르더라

언제일지도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만은 그것이 나에게만은 없을 거라 여기면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라는 모습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어떤 심정일까?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하지만 앞으로 있을 현실 세계에서 나의 존재적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주변인의 눈과 입을 통하여 비칠까도 비디오처럼 보이더라

그러면서 지금 나는 무엇일까? 를 생각하게 되면서,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헤아려 보기도 하더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할 일은 아무것도 없더라

의미가 있었던 없었든 간에 이미 살아왔던 시간은 채워져 버렸기에,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찾기엔 마음이 공허하더라

이것은 생의 포기가 아니며 생에 대한 미련도 아니더라

죽음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내가 없는 이 세상은 어떠할까이더라

주위의 사람들이 나의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도 궁금하더라

아쉬워하는 자, 욕하는 자, 그리워하는 자, 보고파 하는 자 등 여러 부류가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내일 다시 태양은 떠오른다는 것이더라

나는 없어도 내가 있을 자리에 내가 없어도 태양을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내 자리를 비춰주고 있을 것이더라

그리고 내가 했던 일자리는 누군가가 메꾸어 가면서 세상사 하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더라

이것을 역사의 영속성이라 하는가?

인간사 태어나고, 자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함이 다반사이지만 그중에서도 헤어짐이 슬프나 그 헤어짐 중에서도 죽음으로의 헤어짐은 가장 슬프더라

살아온 날들이 적을수록 남은 사람들의 그 슬픔의 무게는 더 커지며, 많다면 그 슬픔의 무게는 더 가벼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울어주는 사람이 많은 망자는 그래도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많이 남긴 사람일 것이고, 적다면 그저 평범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더라

그러나 그 슬픔의 무게가 무겁든 가볍든 그것이 희석되기 위해서는 세월이 약이더라

40년 전 딸을 잃고 온 세상이 무너지는 듯, 삶의 의욕조차 없던 그 순간순간도 세월이 흐리니 매일 울던 울음도 그 간격이 커지더니 이제는 죽은 날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더라

이것을 망각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가? 아무튼, 이별이란 슬픔의 여운만을 남긴다.

얼마 전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몹시 슬펐으나 그 슬픔의 강도는 가족만큼만 하겠는가?

지금도 생각이 나면 안타깝다는 마음이 있지만, 타인이라는 이유로 가슴 절절하지는 않더라

거의 매일 부고가 전해온다.

그때마다 나도 조만간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이 소식을 전하겠기를 하면 마음이 착잡하더라

이미 죽음은 초월하였다지만 이승의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더라

장기 기증을 하였고, 전남대 의과대학 외과학 교실에 시신 기증까지 마친 상황이더라

이것이 내가 마지막 이승에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더라

이제 인간의 형상으로 살 수 있는 날도 어림잡아 10년 정도일 텐데 사는 데로 살아보자더라

그리고 죽음이라는 순간에 서 있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부인이더라

미워했더라 좋아했더라도 간에 그래도 곁에 있어 줄 사람을 아내밖에 없더라

자식을 두 번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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