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라며 가슴에 담을 수 있는가

2025-08-29     나주토픽

추억이라며 가슴에 담을 수 있는가

 

신동운(발행인)

   추억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아름답게 남은 추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준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추억으로 남을 수는 없다. 때로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조차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최근 대중문화 속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례들은 우리에게 “과연 이것도 추억이라며 가슴에 담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단순히 가수 한 명의 행보나 한 곡의 노래를 넘어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추억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비하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노래는 감정의 언어이고, 예술은 사람의 영혼을 울리는 통로다. 그러나 그 노래를 부른 이의 삶과 태도가 정직하지 못하면, 아름다운 가락조차 쉽게 퇴색된다. ‘모란동백’을 부른 전유진이라는 소녀가수는 그 순수한 목소리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러나 그 곡을 부른 또 다른 가수들은 달랐다. 음주운전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법정에 선 자, 화투 그림의 색칠로 돈을 긁어모으며 예술의 진정성을 훼손했고, 친일을 자처하며 대중의 분노를 자극한 자. 같은 노래라 해도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른 흔적을 남겼다. 비호감의 이유는 단순했다. 신선미가 없었다. 그들의 노래에는 감동이 사라지고, 오만과 위선만이 남았다. 문제는 이런 부류가 오히려 득세한다는 데 있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고, 뻔뻔함으로 무장해 오히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대중은 피곤하고, 사회의 기강은 무너진다. 추억이 되어야 할 음악이, 오히려 사회의 허망한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린다.

   이 현상은 비단 가요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비슷한 궤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이미 각종 일탈과 왜곡된 가치가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정치와 권력이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사람이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에 연루된 사건은 국민의 가슴을 철저히 배신했다. 국민이 분노한 것은 단순한 부정 행위 때문만이 아니다. 드러난 증거 앞에서도 오히려 증거를 대라며 버티고, 증언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뻔뻔한 태도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비리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을 허무는 일이었다. 대중문화의 비호감 가수들과 권력의 정점에 선 인사들의 행태는 닮아 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오만으로 일관하고, 책임을 지기보다는 대중의 기억을 왜곡해 자기 합리화에만 몰두한다.  그 결과, 추억이 되어야 할 것들이 쓰라린 상처로 남는다. 노래 한 곡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아름다운 선율보다도 가수의 추한 민낯을 떠올려야 하는 현실. 지도자를 떠올릴 때마다, 희망보다는 배신과 분노가 앞서는 현실. 이것이야말로 사회 전체가 가여운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결국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과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추억이라며 가슴에 담을 수 있을까? 답은 명확하다. 추억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삶을 빛나게 하는 기억이어야 한다. 그 기억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 사회의 흉터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추억이 흉터로 남는 사회를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누구나 아름다운 기억을 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추억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도, 정치를 하는 권력자도, 우리 이웃도 모두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탐욕과 거짓, 오만으로 추억을 더럽히는 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대신 맑은 울림과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중심에 서야 한다. 추억은 삶의 빛이다. 그 빛을 지켜내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