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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칼럼
  • 기자명 신동운

좋은 신문은 결코 특종으로 가득 메워진 신문이 아니다.

  • 입력 2014.10.17 09:14
  • 수정 2014.10.1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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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운 발행인
 시민들은 나주의 신문들이 누구의 신문이라는 느낌으로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독자들을 위해 신문들이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하고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고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로부터 따뜻한 격려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고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늘은 필자가 걷기 어려운 길에 광적(狂的)인 도전을 한 죄 갚음의 마음으로 언론들로부터 몰매 맞을 각오를 하면서 이 글을 올려 본다.

 신문들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사실(fact:팩트)에 충실하고, 신문 자체가 정의롭고 모름지기 시민을 위한 신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신문들이 언제부터인가 특정 정파 저널리즘에 빠져 있어 신문의 가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특정정파의 기관지 역할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의 유혹에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도우미 언론이 패거리 정치와 엮어가는 나주 사회의 현실을 살펴보자. 27만여 명의 나주인을 9만 명 이하로 몰아내는데 앞장섰던 정치인들은 지금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머릿속에는 오로지 과욕(過慾)으로 가득 차 있다. 오직 자신의 당선 목적만을 위한 정치인들은 모든 시민들과의 동행을 멀리하고 끊임없이 갈등사회를 조장을 하고 있다.

 ‘도대체가 정의란 무엇이며 나주사회의 참된 가치를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이고,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 나주사회의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
옳고 그름을 바르게 표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패거리문화야말로 내 편이 아니면 막무가내의 상처를 주고 있는바 정말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한 작태가 곧바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빨간 완장(腕章)을 연상하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언제 부턴가 두 갈래의 신(神)이 생겼다. 죽기가 아니면 살기로 줄곧 쫒아 다니는 광팬들도 많이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쟁터로 변해버린 것 같아 웃기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나주시 채무 문제로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전 시장을 진실공방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무차별 난도질하고 있다. 뻔 한 사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곡하고 있는 단체와 언론이 시민들을 잘못된 사실로 유도하고 있다. 혼자서 하는 일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심지어 신임시장에게 부채인수 거부하라는 웃지 못 할 요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시민들을 우롱하는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가 빚 때문에 부채인수 못하겠다는 나라를 보았는가? 시장이 당선되어 시 부채 때문에 인수 거부하겠다는 시장을 세계 어느 지자체 한 곳이라도 본적이 있는가?

 길이 아니면 걷지 말라 했건만 왜 억지스럽게 길을 만들어 욕심만 채우려 하는가?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가 무엇인가? 경쟁 대상자 싹을 싹둑 잘라버리고 홀로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게 과연 올바른 정의일까? 세상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먼지가 쌓이고 쌓여 시야를 가린 창문 안에서 살아가려 하지 마라. 시민들의 의식도 점차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좋은 신문은 결코 특종으로 가득 메워진 신문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올바른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이 바로 좋은 신문인 것이다. 특정인 입맛에만 맞춘, 단지 여론조작용의 보도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신문의 색깔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이 존재하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 신문의 색깔은 정파지향이 아닌 시민을 위한 사실보도 형이 되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언론을 자유스럽게 해줘야 한다. 경제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글을 쓸 수 있도록 제대로 그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정치의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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