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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기자명 신동운

대한민국 최초 메론 경작재배! 대한민국 한라봉의 대부!

  • 입력 2013.12.12 16:36
  • 수정 2013.12.1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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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재배를 통한 종자보급으로 농민들이 부자가 되게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기쁨이다.’

▲ 이영길(효광농원 대표)
한국 메론 최초의 경작 재배자, 한라봉의 대부 회장님 등 많은 애칭을 가지고 계시는 효광농원 이영길(72) 대표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1985년에 이영길대표의 친구를 따라 메론 농원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기억을 하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농원을 찾아 갔었다.

나주시 석현동 98번지, 한적한 시골은 아니었지만 시골 같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당에는 상당히 오래된 소나무 분재들이 집 주인의 성품을 보여주는 듯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어 방문하는 이에게 차분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선생님이 나타나셨다. 연두색의 스웨터 옷차림이셨다. 인기척을 느끼고 나오시는 것이었다. 기다리셨다는 듯 매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72세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정한 모습이었다. 7 × 7은 49라 말씀하시며 너털웃음으로 만남의 반가움을 더해주시었다. 전라도 특유의 정감어린 말씀에 친근감이 듬뿍 들게 하였다. 선생님의 친구와 함께 동행이어서인지 더욱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 메론 농장을 찾아갔었던 1985년을 정확히 기억해주신걸 보고 깜짝 놀랐다. 만 30년이 다 지난 세월인데 정확히 기억해주심에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다. 들어선 현관의 거실은 싸늘했다. 소득 많은 부자라는 말도 들었는데, 싸늘한 거실의 분위기는 근면 검소의 생활상을 피부로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터뷰 직전 자리에 앉자마자 ‘나주에 신문이 5개나 되는데 왜 신문을 하느냐?’고 다그치듯이 물으시는 것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평소 대통령이 와도 눈치보지 않고 할 말은 다한다는 자신 있는 말씀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어쩔 수 없이 신문을 하는 취지와 목적을 말씀드렸다. 긴 설명 중 다른 설명 다 필요 없이 ‘내가 갖고 있는 것 일부를 사회 환원 차원에서 돌을 던진다.’라는 한마디에 조금 맘에 드셨는지 갑자기 방에 들어가시더니 아주 귀한 호도 한 쌍을 선물해주셨다. 치매예방에 최고라는 말씀 덧붙이시면서...
슬하에는 1남 2녀를 두고 계셨고 모두 출가를 한 상태였다. 일에 열중하다보니 가족을 위해 크게 노력하지 못했다는 것과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미안해 하시는 말씀에 잠시 숙연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이루어 놓으신 업적을 묻자 72세의 고령에 맞지 않게 쩌렁쩌렁하고 구수한 우리 동네 말투로 ‘요로코 미치게 몰입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바보천치 못난 놈의 짓이여!’ 지금 듣고 있는 명성보다 몇 배나 힘들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심스레이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려 하였다. 성공의 과정에 많은 고통과 불굴의 신념, 끝없는 노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얘기 도중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메론박사, 한라봉 대부라는 존칭을 갖기 전 어떤 동기로 특수 작물 재배를 시작하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농사일의 경험이 있다는 가, 농업을 전공했었으리라는 생각으로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뜻 밖의 대답을 해주시었다, 전남대학교 상대 경영학과 출신이하는 것이었다.

부유한 농장의 집안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 전남대학교 상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메론 경작재배를 선택하게 동기에 대해 물었더니 말문을 막으셨다.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소득이 없는 재배는 가난을 물려주는 것 밖에 되지 않음을 강조하시었다. 소비자가 좋아 하는 것과 돈벌이가 되는 것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작물이 되었든지 아무리 좋은 상품도 소득과 연결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고 아열대계의 고소득 작물재배를 통한 부농의 길을 개척하신 것이다. 선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소득 작물이었기에 선택을 하고, 많은 실험도 하셨다고 강조를 하셨다. 지금까지 380종의 메론과 10여종의 한라봉을 시험재배 했다고 말씀하셨다. 최근까지도 세계 최고수준의 관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시험재배 의뢰는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선생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 보니 농업 경영의 맛을 느끼게도 하였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시면서 성공하기까지의 투자와 재투자 반복되는 실패와 성공을 경험으로만 간직하지 않았다. 상세한 기록을 통한 끊임없는 개선의 노력으로 성공을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지금도 컴퓨터 앞에 앉아 세계의 정보 흐름을 파악하고 계신다고 자랑삼아 말씀을 하시었다.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의 뒤에는 뒤에서 묵묵히 뒷바라지 해주시는 아내의 큰 힘이 오늘을 이끌어 냈다고 하는 말씀도 아끼시지 않았다. 아내의 고마움에 깊은 감사를 느끼고 계셨다.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채 하시면서도 마음 속 으로 고생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시고 계심이 분명하였다.

지금까지의 보람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나 매월 22일 재배기술회의를 하는디 올해 송년회 겸 회의를 끝으로 은퇴하고 누가 물어오면 열심히 가르쳐는 줄거시여!’ ‘글고 보람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시험재배를 해서 종자보급 해가꼬 농민들이 부자가 되게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기쁨이여. 지금도 어디가면 농사진 사람들이 회장님 덕분에 나 잘 살고 있습니다. 라고 혀!’ 라고 대답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의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울 수 있었다. 이영길선생님의 성품으로 분명 은퇴는 불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끝까지 나에게 콩 재배하라고 권하시는 것을 보며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계신 것이 눈에 보였기에.... 나이는 고민할 필요 없는 숫자 놀음일 뿐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존경합니다. 당신은 가난한 농민을 깨우치셨습니다. 농촌을 깨우치셨습니다.

▲ 최초 재배 한라봉
▲ 최초 재배 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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