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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칼럼
  • 기자명 신동운

하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

  • 입력 2014.05.02 09:23
  • 수정 2014.05.09 17:53
  • 댓글 0

 발행인 신동운
세월호 참사의 아픔

쏟아지는 눈물이 시야를 가려 글을 쓸 수가 없다. 쉽사리 멈춰지질 않는 눈물은 진정 용서받기 어려운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져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죽음의 공포 속에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억울한 영혼들이 이 땅에 살았던 슬픔을 원망도 하지 못한 채 가버렸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다.
 
도끼로 장작을 패듯이 두 조각을 내어 하늘 멀리 함께 날려버리고 싶은 부정과 부패의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세월호의 대참사를 보며 온 국민은 분노와 좌절 그리로 슬픔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서있는 자들의 만행
24세의 앳된 여승무원과 여교사 등 6명의 의인들이 생명에 대한 사랑을 베풀고 있을 때, 예쁜 우리 자식들이 악마 같은 어른들의 말을 따르고 있을 때, 선장은 선원들과 함께 승객들을 침몰선에 버려놓고 제일 먼저 달아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병실 침상에서 5만원 지폐 와 일만 원 지폐를 말리고 있었다. 세상을 멀리한 영혼 앞에서 안전행정부 모 국장은 기념촬영을 시도했다. 지모라는 사람은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라는 사람 같지 않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하였다.
 
이것은 도발이고 만행이다. 남들보다 좀 더 배우고, 더 잘 살고, 힘 있는 자들의 용서받지 못할 만행이다. “야! 이 ×보다 못한 놈들아! 도대체 너희들은 어떤 놈들이냐! 모두가 부모형제요. 자식들이다!”라고 소리치며 짓이겨버리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다. 이들의 만행을 어찌해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자 들에게 위로가 될꼬........
 
누구를 위한 지도자들이냐
지난 21일 k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이다. ‘진도에서 목격한 것은 정부의 실패, 아니 정부의 부재였다. 체육관에는 생필품 지원센터, 재난심리지원센터, 응급환자 이동 등 각 종 지원 단체와 도시락과 생수, 빵 등 먹을 것도 충분했고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지면 무료 충전도 가능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없었다. ‘정부’였다. 탑승·구조·실종자 수 집계는 계속 오락가락했고, 구조·수색 상황을 책임지고 가족들과 공유하는 공직자는 보이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대통령, 장관들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는 이유는 정부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정부는 당연히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정부로써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일까? 반문해보고 싶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만 모험하지 마라. 국민은 도구가 아니다.
사고가 난 세월호의 구입, 대출 배경부터 사고 발생까지 올바르게 진행된 것이 거의 없다. 기막힌 일이다. 이런 큰 사고의 원인은 정직한 것보다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속이는 것이 유리하게 사회구조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정이 철저하게 조직적으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거짓이 만들어낸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것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 속에도 희망의 빛을 보았다. 위기 속에 빛난 의인들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어린새싹들의 질서의식이 온 국민의 가슴에 감동과 큰 희망을 심어준 것이다. 이 땅에 사라져야할 부정과 부패를 없애라는 교훈을 희생으로 알린 것이다.
떠나간 형제들이여 내 가족들이여!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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