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문화·교육
  • 기자명 빛가람타임스

대성전 보물 제394호 나주향교

  • 입력 2014.04.19 10:58
  • 수정 2014.05.17 16:37
  • 댓글 0

중수.중축 독특한 건축물

대성전 보물 제394호 나주향교

 

나주 향교는 고려 성종6년(987) 8월 12목에대성전 보물 제394호 나주향교 향교를 설치할 때 창건되어 조선 태조 7년(1398)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나주향교는 지금의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 조선 초에 파주염씨 낙 남조(廉順恭)가 살던 땅을 향교부지로 양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지금의 위치는 태조7년(1397)에 향교를 다시 지을 때 정해진 위치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 중수를 거쳤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는 대성전의 건축양식이 조선중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헌종 5년(1839)과 고종 10년(1869)에 크게 중수하였으며 이후에도 근래까지 수차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성종11년(1480)에는 교생 9인이 동시에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가 있어 당시 교수로 있던 박 성건이 금성별곡을 짓기도 하였다. 현재 향교의 규모는 명륜당 대성전 동.서무 동.서재 내신문 외 신문 교직사 총효관 보전각 하마비 등이 있으나 창건 때의 계성사 사마재 충복사 수복청 등의 건물은 1958년 훼철 되어 1959년 동.서재 11칸을 각 4칸으로 고쳐지었다.배치는 명륜당 대성전 내신문으로 이어진 남북자오선 축이 전 묘후학이며 거의 경사가 없는 평지 건축이다. 동.서재,동.서무 는 좌우 대칭이다.
대성전은 현재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익공형태의 소 혀 모양의 첨차를 가진 주심포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건물 양측에 익랑을 갖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정면 3칸 측면3칸의 본량은 5량가구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다듬돌 허튼층 쌓기의 기단에 덤벙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운 2익공식 건물이다.
양측 익랑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각 익랑에는 온돌방이 있으며 지붕의 형태가 본랑쪽의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반대쪽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구조는 막돌 바른층 쌓기 기단에 덤벙 주춧돌과 원형기둥 사각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초익공의 양식을 하고 있다. 동 서재는 정면4칸 측면 1칸 전퇴로서 자연석 주춧돌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다.
나주향교는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충복사란 사우가 있었다. 선조30년(1597) 정유재란 때 당시 대성전의 수복이었던 김 애남(金愛男)이 성묘(聖廟)의 위판을 안전하게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조용해지자 다시 대성전에 모신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김 애남을 복호(復戶)시키고 그가 죽자 충복사란 사우를 건립하여 제사 지내 주었다. 그 후 사우가 오래되어 1922년 폐허되자 1924년 2월 유허비를 세워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