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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교육
  • 기자명 이동석 기자

“나주시민들이 문화예술로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 입력 2013.12.03 12:58
  • 수정 2013.12.1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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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작업실은 원로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구순 화백의 붓끝엔 아직도 나주사랑 듬뿍

 
성북동 중앙로 인근의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문화사랑방’이란 흔치 않는 간판이 보인다. 허술한 건물에 달랑 간판하나 있는 곳이지만 안을 들어다보면 없는 것이 없다.

20평도 안 되는 곳이지만 피아노, 섹스폰, 기타, 클라리넷, 오카리나, 클라리넷 그리고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아코디언이 오래 묵은 책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 그림이 아직 미완성인 채로 벽을 장식하고 있다.
흔치 않는 광경이지만 이곳은 나주 문화예술의 벌전을 위해 힘써 온 청운 이학동 화백의 소중한 공간이다.

나주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해온 어르신들이 사랑방이자 작업실이고 연습실이다.
무궁화 화가로 유명한 나주토박이 청운 이학동 선생은 1924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90세다. 문화예술에 대한 그이 사랑은 연륜만큼이나 깊다.

성북동에서 태어난 이학동 화백은 조선대 미대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 미술연구소를 수료한 서양화가이자 교육자이다. 중등학교와 전문학교에서 37년 동안 미술을 가르쳤다. 일본 동경미술협회의 초청으로 미술전에 출품하고 한국전통예술대상전 초대작가로 활동했다.

서울 대전 등지에서 개인전만 30회를 열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지금은 문인화가로 더 이름을 날리면서 우리의 꽃 무궁화를 전문적으로 그린다.

이 화백의 젊은 시절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배가 고팠다. 아니 세상이 예술가에게 배고픔을 강요했을 수도 있다. 오직 예술을 위한 작업만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이학동 화백은 서양화(유화)를 그리면서 물감을 살 돈이 없어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30년 전이다. 당시엔 서양화보다 동양화를 선호하였고 상대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재료값이 쌌다. 그러나 이화백은 무언가 의미가 있는 작품을 구상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궁화였다.

무궁화 하나만의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민족을 생각하는 정열로 무궁화 그림을 시작했다.

오는 12월 초 예총주최로 열리는 무궁화 작품 전시회(약40점)를 준비하면서도 똑같은 고충을 겪고 있다. 무궁화만으로 우리 국토를 표현하고 태극기를 그리지만 소재의 빈곤은 아직도 그가 참기 힘든 작업과정이다. 그러나 이 화백의 무궁화는 세월의 경륜이 묻어나고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기 그지 없다. 아름다우면서 감동적이다. 이화백의 마음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화백은 1962년 나주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나주문화 창달을 꿈꿨다.
예술인들의 동호회격인 연예인협회 창설을 주도했다. 미술, 음악, 문학, 연극 등 문화예술인들 7~80명이 모였다. 아마 나주가 예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도 이때가 아닌가 싶다.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이 화백은 교육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교육자로서 생활이 힘들어 혹은 잘못된 길을 들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청소년들을 잊지 않았다. BBC야간 중학교를 설립해 어린 청소년들에게 공부의 기회를 주었다. 박봉의 월급과 재능기부만으로 운영했다. 조선대출신의 교사와 당시 호남비료에 다니던 지인들을 설득해 8명의 교사진을 꾸렸다. 교실은 당시 금계동(현)에서 막걸리 주조장을 운영하던 고 오만선씨가 제공했다.

남녀 120명의 학생이 입학하여 못 이룬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야간중학교는 7년 동안 운영했다. 정부의 중학교 의무교육 정책이 시행되면서 문을 닫았다.
이 화백의 이러한 이력 때문일까. 현재 노인 복지관에서 한글강사로 활동하고 나주향교 명륜 전통문화강좌에서는 문인화 강습지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화백은 문화사랑방을 소중하게 여긴다.

지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손때가 문은악기들과 이곳을 찾는 이들의 열정이 90세의 고령을 이기고 있는 것이다. “제가 살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우리 나주시민들이 문화예술로 좀 더 풍요로운 삶,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이 화백의 붓 끝에는 나주사랑이 듬뿍 묻혀 있었다.

문화사랑방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그곳에서 그림을 배우고 피아노나 섹소폰도 배울 수 있다. 악기도 살 필요가 없다. 문화사랑방에 있는 악기를 사용하면 된다. 이 화백은 문화사랑방을 운영하기 위해 5년 전부터 나주공공도서관 평생교육원에서 아코디언을 배우고 섹소폰 동호회를 찾아가 강습을 받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아코디언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공연에도 참여하고 있다.

다른 악기들은 아직 프로 수준급은 아니지만 배우고자하는 열의만 있으면 함께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동양화도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문화사랑방을 찾으면 된다. 이 화백의 따뜻한 손이 반갑게 기다리고 있다.

문화예술을 통해 나주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싶다는 이 화백의 꿈은 다시 문화사랑방을 통해 피어나고 있다. 그의 열정이 나주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것으로 기대하면서 문화사랑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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