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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칠보시(七步詩)

  • 입력 2021.01.22 22:58
  • 수정 2021.01.2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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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시(七步詩)

 

수의사  조 영 만

한설장학회 이사장

  이 시는 삼국시대 위왕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 AD.192~232)이 지은 시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지은 시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조조에게는 조비와 조식 두 아들 중 특히 조식은 ‘천하의 재주를 한 석(石)으로 친다면, 그중 8할은 조식의 것이다’라는 칭송이 따를 정도로 시재(詩才)가 출중했다.

건안 25년(220년)에 조조 나이 66세로 병사하자, 그 자리를 태자 조비가 물려받아 위나라 왕이자 승상이 되고 조정의 대권은 조비의 손으로 넘어갔다.

조식이 이 시를 쓰게 된 데는 질투와 시기심이 많았던 형 조비가 총명하고 재능이 출중했던 배다른 동생을 제거하려는 흉심, 그 이면에는 한 여인을 두고 벌어진 치정 관계도 내재 돼 있었다. 조식은 견(甄)씨 집 처자를 마음에 두고 있어 곧 중매인을 넣어 혼인하려던 차에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한 조조는 견씨 집 아가씨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선 장남 조비의 배필로 삼아 견황후가 되었다.

그 후에 조비는 조식이 견황후에 대하여 연정을 품고 있음을 눈치를 채고, 조식을 없애려고 조식을 불러 자기가 일곱 걸음을 다 걷기 전에 시 한 수를 지으라고 했다. 만일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짓는다면 살려주겠다고 하면서 제목을 ‘형제’로 하되 절대로 시 내용에는 ‘兄’자와 ‘弟’자를 넣지 말라는 것이었다.

煮豆燃豆箕

(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 솥 속의 콩이 울고 있구나)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 본래 한 뿌리에서 났건만)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 어찌 이리 급하게 삶아대는가)

하지만 조식은 과연 천재답게 그 짧은 순간에도 조비가 일곱 걸음을 다 걷기 전에 침착하게 이 시를 다 지었을 뿐만 아니라 형의 괴롭힘에 대해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서운한 심사를 전했다. 이는 한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한 핏줄인 자신(콩)을 형(콩대)이 지나치게 핍박하고 있음을 묘사한 시임과 동시에, 은근히 자기를 높이고 형 조비를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래도 정말로 '형제'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형제간에 이러는 건 너무하지 않냐'라고 하소연하는 내용도 포함한 절묘한 시다. 그 뜻을 알아들은 조비로 하여금 일시적으로나마 뉘우치는 마음을 품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러나 조식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1년 동안 세 차례나 봉지(封地)를 옮겨 다녔고, 형의 엄중한 감시 아래 온갖 박해를 받다가 40세에 우울증으로 목숨을 거두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거의 일 년여 동안 지속하는 코로나 19의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질 않고 우리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가고, 만나고, 즐기고 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 일부이나, 만나는 것이 두렵고, 가는 것이 망설여지고, 편히 즐길 수 없는 등 일상이 망가져 버렸다.

그런데 지금 정작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코로나 19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는 주변의 우리에 의하여 괴롭힘을 받고 있다. 방역지침을 무시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주변 우리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조비는 조식의 칠보시를 듣고 일시적이나마 뉘우침이 있었다고 하였지만, 지금 그 몇몇 그 몰지각한 사람들은 뉘우침마저도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로 인하여 주변의 다른 사람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하는 것처럼 큰 위선은 없을 것이며,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처럼 큰 허세는 없을 진데 말이다

콩깍지 속에 나란히 있는 알갱이를 불안하지 않게, 그 전에 한번 주변을 돌아보는 배려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같이 정말이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살얼음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하 수상한 시절에는….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나, 지금은 이웃을 사랑하여 오늘 감내함을 마음에 두었으면 함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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