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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나주를 빛낸 지혜로운 덕망가 ㈜금성건설 대표이사 오종순 회장

  • 입력 2021.01.22 22:45
  • 수정 2021.01.22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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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를 빛낸 지혜로운 덕망가 ㈜금성건설 대표이사 오종순 회장

시대를 뛰어넘은 덕장의 사관(史觀) - 부의 사회환원·봉사·인재육성론 나주시의 품격 높여

오종순 회장
단란한 오종순 회장 부부

  산과 들에 조화롭게 놓인 집채같은 바윗돌이 전부 보석일 필요는 없다. 그 가운데 반짝이는 작은 알 보석 몇 개가 세상을 훤히 비춰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 또한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일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의 위대한 인격이 인생에 희망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지도자가 절실한 현대사회에 주는 교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나의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밀라’라던 격언의 말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를 해치면 너를 해칠 권리는 나에게 있다’라는 마인드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미덕 중 ‘덕(德)’이라는 덕목은 사라져가고 ‘죽일 놈과 죽을 놈’이라는 논리가 지배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해도 지혜로운 삶을 통해 성공한 일부 인사들은 사회의 등불이 되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이끌어가는 덕장(德將)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본지 163호에서는 기축년 새해를 맞이하여 영역을 불문한 나주 사회 곳곳에서 덕을 베풀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자신도 모르게 의인이자 덕망가로 널리 평가받고 있는 소중한 사람의 흔적을 찾아 글을 올려 본다. 주인공은 전남 나주시가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숨은 의인'에 선정된 기업인 ㈜금성건설 대표이사 오종순(67) 회장(이하 오 회장)이다.

▶ 시대를 뛰어넘은 덕장의 사관(史觀) 나주의 빛으로

오 회장은 가난을 체험하고 깨달음을 통한 베풂과 나눔의 철학으로 인생을 실천해나가는 지혜로운 덕망가이다. 성공과 함께 ‘행복은 결코 혼자만이 독식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에 이어 성공의 부산물로 얻은 부를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고통받은 사람을 위해 고민하고 함께하며 더불어 사는 기쁨을 이어가며 사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리고 오 회장은 ‘만족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즐거움을 찾을 수 없고, 평상시의 성실함이 없이는 평생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라고 말하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즐거움이라며 ‘부(富), 명예, 지위, 쾌락’은 멀리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아름다운 화합과 배려와 나눔의 삶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또한, 그는 항상 ‘위대한 봉사, 아름다운 자선 즉 베풂과 나눔 철학의 실천’을 가난했던 자신의 과거를 보상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으로 겸손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의 ‘소박하지만 위대한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임이 틀림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불어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따르는 이웃도 있고 친구도 있다‘라는 어구의 뜻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친구 또는 좋은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 '더불어 잘 사는 삶'을 추구하는 부부의 노력으로 성공 이끌어 내

 오 회장은 그가 태어난 탯자리 나주시 공산면 상방리를 떠난 적 없는 ‘진성 나주 토박이’로 기업 활동을 하는 동안 때로는 주소 이전의 필요를 느끼면서도 고향 지킴을 버리지 않을 정도로 뼛속 깊이 새겨진 애향의 마음을 간직한 성공한 나주인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 첫걸음을 내딛던 시절 보증금 10만 원과 사글세 2만 원이 없어 빚을 내야 했던 오 회장은 49세에 세상과 멀리한 부친의 ‘가난한 소작농 7남매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라는 유일한 유산이던 무거운 짐을 그의 어깨에 짊어지고 시작했었다. 하지만 오 회장의 긍정의 마인드로 무장된 근면·성실과 신뢰 그리고 날카로운 예지력은 어김없이 성공한 기업인으로 이끌었다.

희망 자체가 절벽이었던 어린 시절은 '가난이라는 고통은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성공을 다짐하는 기회였다'라며 중학 시절 '수학여행 학우들과 동행하지 못한 채 뒷모습만 지켜보는 외로움과 함께 화장실 청소를 해야만 했던 시절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라고 아픈 기억을 회상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도 진학 기회부여로 성공의 기틀을 마련해주신 부모님의 애절한 사랑에 눈시울을 적시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수시로 선산을 찾는 그의 모습을 보는 이웃 사람들은 ’효자 오종순‘의 면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 회장의 성공기는 독특한 점이 있다. 단기 하사로 입대해 장교로 제대한 것은 물론 군 생활에서의 부대 동기 동생으로 소개받은 부인 권효순 여사(당시 은행근무)와의 만남, 제대 후 당시 잘나갔던 H 제과에 입사, 이립(而立 30세)이 약간 넘은 33세에 광주·오 씨 문중 총무의 이력이 오 회장을 성공으로 이끌어 준 것이었다.

이미 군 생활부터 그의 능력과 친화력과 신뢰는 동료로부터 평생 동반자인 부인을 만나게 되었고, 가난했지만 사람됨을 간파한 장인 어르신의 뛰어난 안목으로 선택한 사위는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첫 직장인으로 선택한 H 제과에서의 능력은 훗날 사업가로서의 많은 인맥 형성에 큰 도움도 받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 광주·전남 오씨 문중에 33세의 청년 총무가 태생하자 ’망조‘마저 운운했던 종원들을 포함한 모든 회원의 기대에 부합해 지역 문중의 번성을 이끌었다. 오회장의 깔끔한 행정처리와 부부의 헌신적인 활동이 성공의 기회 즉, 1997년 사업 창업의 기회를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기업인으로 성공하는 과정에서 큰 난관을 겪지 않았던 사연은 천생연분의 부부가 함께 만든 작품이었고, 자녀들에게도 자랑하며 그들의 인생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 오종순 회장의 ‘사회환원 철학, 봉사미학, 애향 정신 ’ 나주의 품격과 가치를 빛내

 오회장의 성공을 보며 눈여겨볼 것은 ‘자수성가한 기업인은 결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것과 ‘오 회장의 사회환원 철학과 철저한 애향 정신’이다. '양심적 삶을 제일 큰 재산이자 인생 철학이다’라고 말하는 오 회장은 하나하나 실천해가며 자신의 존재를 넘어 나주의 품격과 가치를 빛낸 공과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국가 최고의 공인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감정원 비상임이사 역할을 2014년에 이어서 2016년 대한민국 최초로 재선임되는 영광을 얻으며 나주를 빛냈고, 우리나라 농촌 고유의 지역개발 공동체이자 사회 발전 운동의 모체로 한국 고유의 공동체 정신문화를 오롯이 이어온 운동으로서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25년간의 열정적인 활동을 통한 새마을운동 나주지회를 전국에 알렸으며, 경제계의 거목이 수두룩한 전남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전남 건설협회장 연임으로 나주인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대통령 직속 헌법 기구인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나주지회장 2회 연임 동안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포장을 받는 영예와 함께 국가원수가 나주에 지대한 관심을 두는 계기도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육 인재육성과 효도에 관한 관심과 후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효를 제1의 덕목으로 여기는 그는 효자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나주교육진흥재단의 창단 멤버로 출발해 가장 큰 후원자인 재단 이사로 나주교육 발전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 지금도 오씨 문중의 장학재단 이사장 역임을 통해 매년 30~50명의 지원을 통해 인재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나눔과 봉사를 통한 인재육성과 지역발전을 위한 희생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가고 있는 오 회장은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고향 지키는 후배를 돕고 나눔을 실천하며 더불어 잘사는 삶을 추구한다.

 가난과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오회장은 43년 전 1978년 직장 생활 시작과 함께 박봉을 쪼개어 과자와 빵을 사 들고 보육원이나 양로원 등의 복지시설을 찾아 나눔의 실천을 시작했다. 당시 손에 쥔 것은 없었지만 실천 가능한 것부터 실행하며 ’더불어 잘 사는 사회’라는 그의 ‘인생 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첫 행보였고 훗날 덕망가이자 사회의 의인으로 꾸밈없는 그의 인간성은 존경받는 인물을 향한 시발점이 되었다.

오 회장의 나눔 실천은 기업인으로 자수성가한 이후 더욱 발전해 장학사업, 홀로 사는 노인, 다문화 이주여성, 새터민 지원, 소년·소녀 가장, 조손가정 지원 등 지역사회 곳곳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를 권유하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청렴하고 강직한 봉사와 나눔의 대부 오회장의 대답은 단연코 ‘NO!’였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오 회장 같은 분은 고위직에 추대되어 봉사할 기회를 줘야 한다’라며 존경하는 마음을 전했다. 이를 한결같이 외면하는 오회장은 오직 기업인으로 성공하기까지 부인의 헌신적 내조에 깊은 사랑과 감사를 표하며 함께 이룬 기업성공을 고향 후배의 성장에 보탬을 주고, 어른과 공조하는 조화로운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꿈의 실현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오 회장이 꿈꾸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는 모두의 꿈이다. ‘활력이 펄펄 넘치는 나주사회 실현’은 결코 꿈이 아니다. 오 회장의 열정적인 봉사와 나주사랑 정신이 우리 나주시민 모두의 꿈으로 완성되기를 기대해보며 존경하는 마음을 전해본다.

<나주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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