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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칼럼
  • 기자명 나주토픽

영혼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국민에게

  • 입력 2020.12.1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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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국민에게

 

  발노축석하니 어족기탁(發怒蹴石 我足其坼)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화를 내어 돌을 차니 내 발이 터진다’라는 말이다. 정치 불안과 코로나 19의 대 확산으로 숨쉬기 힘든 세상 건강한 모습으로 헤쳐나가는 지혜로움이 절실한 시기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 지금 우리 주위에는 열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과 하나를 주워도 아까운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 면 영혼까지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넉넉하고 푸짐한 사랑 가득한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유가 넘치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지만, 뜻대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시린 가슴 한쪽을 데워주는 사랑으로 인생살이 빈자리를 채워줄 동반자를 찾는 이유가 되고 성공 여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행복과 불행 모두를 공유하며 경험하면서 세상 물꼬를 터 가는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이라는 새싹을 바라보며 헤쳐나간다. 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살이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가느다란 새싹마저도 싹둑 잘라버리는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들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그 파렴치한 무뢰한을 향해 ‘영혼까지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경험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한결같이 ‘아름다운 사랑을 통째로 다 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은 오직 자신과 가족뿐’이라고 보이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국민의 존재가 ‘하나를 주어도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들 가슴에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국민을 향한 희망 을 심어주기는커녕 존재가치에 해한 기대마저도 부정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 씁쓸한 입장으로 지켜볼수밖에 없지만, 국민은 조그만 법규위반 하나만으로도 벌벌 떨게되지만 무소불위의 음지의 권력자로 알려지고 있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과의 충돌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지지성향에 따라 쾌락과 분노라는 엇갈린 감정 대립도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의 차이나 검찰총장의 제재에 항의하는 검사들의 기세 높은 저항을 지켜보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분명 정의의 기준이 되는 법을 추구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 기준 또한 애매모호 하다.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인 그들이 다른 공무원들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관철을 위한 집단행동이다. 코로나 19 비상사태의 긴박상황에서의 노동자로 불리는 노총의 파업과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마저도 그들의 손바닥에 장악하려는 막강한 검사들의 반발은 분명 궤를 달리한다. 생존의 차원이 아닌 기득권 세력 사수를 위한 추악한 횡포이다.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가르침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하나를 주어도 아까운 사람’이라는 처지의 지도자’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여야(與野) 정치인 모두에게는 ‘국민 행복 추구 의무’라는 사명이 주어졌다. 국민에게 주어진 ‘법의 준수’라는 의무는 예외가 없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지도급 인사들에게도 준법을 요구한다. 나주 사회 지도급 인사들 역시 ‘준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모범 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부 정치인을 지켜보며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가?’라는 지적에 두려움을 갖고 영혼마저도 국민을 위해 바칠 수 있는 자세로 무장해주기를 바란다. 열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지도자의 길을 걷기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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