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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빛가람타임스

역사의 현장 나주읍성 서성벽, 함께 보존하자

  • 입력 2014.03.22 09:20
  • 수정 2014.03.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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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호남 최대의 나주읍성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 동학농민군들이 나주 서쪽 월정봉(‘달우물’이라는 뜻의 아름다운 금성산 봉우리)으로부터 물밀 듯이 내려와 나주읍성 서쪽 성문인 서성문을 공격했다. 당시 농민군은 ‘한쪽에서 성문을 쳐부수려고 하고 한편으로는 성 위로 오르려고 하며, 그 모인 수가 숲을 이룬 것 같다’고 할 정도의 총공격이었다. 이날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혁명이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그날의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일제가 조선의 도시를 상징하는 나주읍성을 훼손하고 철거하면서 땅 없고 힘없는 백성들이 성벽 위에, 또 성벽을 기대고 슬픔 어린 집을 지었다. 그렇게 조상들의 지혜와 세월 속에서 견고하기만 했던 나주읍성은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고 마음에서 잊혀져 갔다.

나주읍성을 이야기하자

나주는 고려 건국에서 조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약 천년동안 전라남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이라는 전국 8대 도시였다. 한국 최초의 오일장이 나주에서 시작될 만큼 활기찬 삶의 터전이었고 전국에서 가장 큰 객사를 지을 정도로 위상을 자랑하던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였다. 1872년 나주목 지도를 보면 나주읍성과 읍성 안팎의 도시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죽하면 전라도 사람들이 나주에 와서 서울구경을 하였을까?

이렇듯 전라남도의 서울이자 자랑이던 나주의 명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주읍성이라는 도시유산이다. 우리 선조들이 고려를 건국하고 조선을 지탱하는 막중한 역할을 거뜬히 해 내면서 건설한 도시, 그저 돌로 쌓고 길을 내고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바람과 물을 거스르지 않고 좋은 자리를 정해 정성스레 키워낸 선조들의 지혜와 삶이 오롯이 남아 있는 인류유산이 바로 나주읍성인 것이다. 그중에 가장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 서쪽 성문으로부터 나주천까지 이어진 서쪽 성벽 250m이다.

문화재청과 나주시가 나주읍성을 국가 사적 제337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복원해 온 세월이 25년이나 된다. 1993년 나주읍성의 남쪽 성문이 복원된 것을 시작으로 동쪽 성문 동점문과 서쪽 성문 서성문이 옛 모습대로 복원되면서 나주읍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쪽 성문인 남고문만을 지정했다가 호남을 대표하는 나주읍성의 역사적 위상과 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가치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4대 성문과 성벽 일부분을 확대 지정한 것이다. 이후 성터를 사들이고 발굴조사와 문헌조사를 통해 모습을 갖춰 가면서 전라도의 자긍심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恨과 희망의 성벽, 인류 유산으로 함께 보존하자

2014년 나주읍성 서쪽 성벽에 올라 지은 집들, 성벽을 기대고 살던 집들이 철거되었다. 100년만에 우리 앞에 성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비록 호남을 지키던 우람한 성벽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상처투성이의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100년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지탱해 주던 성벽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는지 숨죽이고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100년을 이어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벽은 사람들을, 사람들은 성벽을 그렇게 지켜주며 100년을 이겨냈다. 우리는 이곳을 ‘恨과 희망의 성벽’이라 부르고 싶다.

이제까지 우리는 한국의 읍성도시들을 보존하면서 성안에서 삶을 이어오던 사람들은 성 밖으로 내보내고 과거를 재현하는 박제화 된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생명의 공간을 죽어버린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지 되물어보아야 한다. 원래 읍성은 성문과 성벽으로 상징되는 물질유산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읍성은 도시이다. 도시 안에 사람들의 삶이 있다.

전국에 천년동안 살아 있는 읍성도시는 나주읍성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그 안에 사람들이 문화유산과 함께 숨 쉬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읍성을 바라보고 천년 된 거리를 걷고 천년 된 터에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나주읍성의 가치는 이러한 생명력에 있다.

그렇다면 죽은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읍성을 지키고 살았던 사람들, 읍성을 빼앗고 싶었던 사람들, 읍성을 없애고 싶었던 사람들의 슬픈 恨의 역사를 이제 우리가 함께 희망을 품고 이야기해야 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나주읍성 서쪽 성벽을 만나고 어루만지고 나름의 방법으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하자. 어떻게 보존하고 알려야 할지를. 너와 나를, 나주와 나주가 아닌 곳을, 한국과 한국 아닌 곳을 넘어서 인류의 유산으로 함께 지키고 부활시켜 나가자.

 

 

김관영(나주시 문화체육관광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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