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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어머니의 속옷

  • 입력 2019.05.12 03:23
  • 수정 2020.03.2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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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속옷

 

청송  김성대

나주문인협회장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머리에 가득 담은 고구마를 이고 뒤뚱거리며 쉼 없이 산등성이를 돌아오셨다.  힘겹게 느껴지던 어머니의 모습과 늘 다니시던 산길이 지금도 두 눈에 선연(鮮然)히 떠오른다. 그 힘든 일을 하시면서 한평생을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 한마디 안 하시는 고집스러운 어른이셨다.그 많은 나무와 채소 다발을 머리와 등에 메고 나주, 영산포 5일 시장에 가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돕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님과 함께 시장터에다 짐을 내려다 드리고 학교에 갔다. 그래서 나는 아이스캐키(얼음과자) 신문 배달을 하여 조금이나마 학비를 보태야 했다.

 초등학교 졸업 날이 다가오자 걱정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은 광주로 중학교에 간다고 좋아하지만 나는 그럴 처지가 못되어 숙연(肅然)해지고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와 꼭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런 나를 아시는지 빵 장사를 하시는 분에게 내 납부금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다 학교에 가서 사정해 등록을 마쳤다. 이런 어린 시절을 눈물겹도록 마음에 담고 지냈던 그런 나를 위해 어려웠던 이야기를 가슴에만 묻어 두고 내색을 하지 않던 어머니의 사랑을 이 어찌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요?

  따뜻한 봄날이면 아름답고 고운 향기 날리며 피어나는 들꽃 같은 강한 내 어머니. 행여 누가 볼까 봐 남몰래 뒷간 빨랫줄에 널어놓은 어머니의 기워진 속옷은 이쪽저쪽 모두 푸른 바다에 띄어 놓은 조각배 같았다. 
 몰래 숨겨놓은 눈물 같은 모정(母情)을 본 것 같아 어린 마음에도 가슴이 너무 아팠다. 
삯바느질에 농사일하며, 한 푼이라도 더 벌어 공부시키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세월이 많이 흐른 어른이 되고서야 깨달았던 아들이다. 미싱 소리에 깊은 잠을 자다가도 눈을 뜨고 보면 어두운 밤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돌돌 재봉틀을 돌리시며 5일 만에 열리는 시골 장날에 찾아서 입고 갈 동네 사람들의 옷을 밤새도록 만들었다. 농사일과 남의 옷 짓기에 바빠 새 옷 한번 못 걸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산소(酸素)같으신 어머니다.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면서도 "절대로 너희들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다." 며 눈물로써 기도를 드리며 각오(覺悟)를 단단히 다지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아! 난 그때는 왜 몰랐을까?  가마솥에 밥을 해놓고 고개를 넘어 십리 길 학교에 간 자식들 마중 나와 기다리시는 어머니 식구들이 밥상을 놓고 빙 둘러앉으면 제일 먼저 쌀톨이 들어 있는 한 주걱 얹어진 아버지 밥그릇이 올라온다. 그다음에는 당연히 어머니 밥그릇이 올라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다. 자식들의 밥그릇이었다.


 식구들 먹을 양식조차 모자라는 어려운 생활 형편인데도 밥을 꾹꾹 담아주시며 많이 먹고 빨리 커 세상에 빛과 소금 같이 되라 하셨다. 정작 온종일 일하시느라 허기(虛飢)지고 배고팠을 당신의 그릇에는 다 퍼주고 밥이 절반이나 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순 꽁보리밥이었다.많은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의 사랑은 주렁주렁 내 가슴에 매달려 있다.  그 가슴 짠한 어머니의 사랑을 보물단지처럼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가끔 추운 겨울날이면 곶감 빼주듯이 꺼내주면서 할머니의 위대한 존재를 전해 주리라. 어머니 사랑합니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더운 여름날에 어머님은 소천하셔서 하늘나라에 가셨다. 그래서 우리 5남 2녀의 자녀는 남들 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자수성가하였다. 어머님의 부의금에서 평생 비가오나 눈이오나 다니셨던 나주제일교회에 7남매가 뜻을 모아 "이단례 권사 장학회"를 만들어 지금도 1년에 한번씩 작은 성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지급하고 있다. 저는 그런 어머니의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국민연금 113만원 중에서 20만 원씩 어머니 장학회에 자동이체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감사드립니다.   
 

★ 2009년 6월 10일 95세로 하늘
   나라로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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