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만들어진 것일까? 만드는 것일까?
예를 들면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이른바 911테러에서 2,996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들 모두는 그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누구도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죽은 사람들 모두의 운명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연하게도 그 비행기에 탑승하였거나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만일 운명이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길 위를 갈 수밖에 없었던 결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성실하고 삶도 열심히 하는데도 그저 궁핍하기만 하고 좋지 않은 일들로 쪼들리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 인하여 현재의 삶이 아무리 성실하더라도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딸의 시사주를 풀더니 바로 하는 말 ‘어! 이 아이 죽었네’하면서 사주책에서 해당 쪽을 펼치니 그림에서 사람이 집 울타리 밖에 서 있더라. 당시 그래도 대학 교육을 받은 신세대라 칭하면서 무속신앙을 미신이라고 터부시 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운명에 대한 개념을 바꾸게 되었더라
그래서 누군가 어렵다라고 하면, 그때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무속인을 찾아가 보라 권하게 되었다. 특히 출마하고자 한다면,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결혼을 생각 한다면 등등 무언가를 결정하여야 할 때는 반드시 무속인을 찾아 의견을 얻으라 하고 있다. 우리는 점을 말하면, 점쟁이 저 죽을 날 모른다고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무리 접신한 무속인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의 앞으로의 운명에 대하여 어찌 알겠느냐만, 그래도 그 사람 사주팔자에 나와 있는 그에 대한 운명은 설명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절대로 하지 말라고 강조할 때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라고 권한다. 그런데 무속인과 상담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지난 과거의 일을 잘 맞추더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한다. 그것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 좋은 예언을 듣는다면 마음이 찝찝한 것은 사실이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하면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어 좋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