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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성공한 모범 귀농인 고소득 창출 신개념의 농업경영 펼친 제일회배 배상호 회장

  • 입력 2016.11.12 09:18
  • 수정 2016.11.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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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모범 귀농인 고소득 창출 신개념의 농업경영 펼친 제일회배 배상호 회장

▲ 배상호 회장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의 신념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나주배 명성을 되찾은 걸출한 스타

오늘도 나주 곳곳에는 축제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천년고도의 역사를 품에 안은 나주시는 작은 서울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문화재와 아름다운 명소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풍요로움의 상징인 나주평야와 200여년의 명성을 간직한 나주배 그리고 혁신도시 에너지밸리는 각각의 자리에서 으뜸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주토픽 70호에서는 잠시 정상의 자리를 내주었던 나주배의 최고 명성을 되찾은 걸출한 스타 제일회배 작목반 창설자 배상호(67) 회장의 성공가도를 뒤 쫒아 보았다.

배회장은 40대 초반 귀향한 영농가로 나주배 전통 재배기술만으로 제자리에 정체되고 있던 혼돈의 시기에 정상(頂上) 나주배 명성을 되찾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가정원예품(야생화, 분재, 분경 등)전시회를 통해 나주시민의 정서함양에 기여하는 ‘나주 자연예술총연합회를 창립하였으며 한국 춘란(春蘭) 재배로 고소득 창출을 선도했으며 전국 난 전시회 심사위원장을 8년 째 역임하고 있는 시대의 걸출이다.

▲ 대한민국 최고의 제일회배


지난 과거 서울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노력한 만큼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던 배회장은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던 일을 멈추고 인생의 전환점을 찾는다는 것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수많은 시간 번뇌의 끝은 귀향이었다. 부인과 딸 셋을 가진 아빠의 결정은 순조롭지 않았지만 평소의 신념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철학은 어김없는 귀향의 선택이었다.
과수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가업 대물림은 30년이 다 된 지금까지 후회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난관(難關)이 닥치고 재난이 몰려왔을 때 하늘을 보며 한 숨 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코 물러서본 적은 없다.

서울생활에 익숙했던 배회장은 귀향과 동시 과거는 잊어버렸다. 그의 뜨거운 가슴과 두 눈 앞에 보이는 배 과수원 1.7㏊(5,000여 평)이 전부였다. 2 남 1 녀의 장남인 배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틈틈이 부모님을 도왔던 연고로 과수원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배 영농으로 생활을 되풀이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이 허락하지 않았다.
뒤늦은 배 영농사업의 투신이었지만 항상 최고 품질의 배를 생산하는 최고의 영농인이 되기를 원했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작과 동시 그의 노력은 업계의 모범이 될 정도로 특유의 성실함과 함께 열정을 다 바쳤다. 그가 노력한 만큼 배의 성장도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수확을 할 수 있었다. 항상 최고의 품질을 주장하던 배회장은 1997년 수확한 배중에서 최상품을 선별 포장 후 큰 기대와 함께 부산공판장을 찾았다. 공판과 함께 최고를 기대했던 그의 심정은 곧 바로 절망의 수준에 이를 정도였고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나주배 특히 그가 정성스럽게 재배한 최상품의 배가 거의 무명에 가까운 진주의 문산배보다 저가 품목으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기가 막혔고 지금도 그 순간의 아픔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배회장은 큰 충격과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로 다른 기대와 함께 서울을 향했지만 상황은 부산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경기 배는 물론 충청 배도 나주배의 상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기·충청배 1박스(7.5kg) 35,000원, 나주배 25,000원은 더 한 충격을 주었고 실망이 거듭되었지만 배회장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유의 오기가 발동되었다. 최고를 추구하는 그의 도전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배회장은 서울 가락시장 5개의 공판장 중 유명한 서울청과공판장을 찾아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았다. 나주배의 후진성은 정보부족과 후진성과 뒤떨어진 시장교섭력 그리고 흠집 있는 배 감추기(일명 고갱이)로 판단했고 출하의 지속성이 없었음을 알고 출하 물량을 다향 확보하기 위해 우수한 농가를 모아 재배 방법의 균일화와 엄격한 선별규정을 만들었다.

서울청과 공판장은 서울 가락시장 5개의 공판장 중 대한민국 최고급의 농산품이 모이는 곳이고 중매인들이 최고의 납품처 백화점(신세계 롯데 등) 골프장 남품처를 확보한 거대 시장이었다. 또한 배를 포함한 거의 모든 과채류 시세의 기준이 되는 공판장이기도 하다.
배회장은 1998년 나주 관내 우수농가들을 찾아 제일회 작목반을 구성하여 최고의 제일회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9년 우수배로 무장된 제일회배를 트럭에 싣고 가락시장 서울청과장에 입성하여 나주배가 전국 최고의 배임을 입증하였고 지금도 최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제일회배 작목반의 노력과 열정의 결과는 그들의 기대를 뛰어 넘은 것이었다. 당시 7.5kg 1박스 60000원의 최고가는 시세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까지도 최고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나주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으면서 자생적으로 조성된 작목반의 성과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고 배회장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배기술을 전하며 존경받는 인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한때는 14명의 회원이었지만 지금은 10명이 운영되고 있는 제일회 작목반은 나주는 물론 전국에 벤치마킹의 본보기로 소개되고 있으며 농가 고소득에 기여하고 있다.

배회장은 지금도 배의 추석출하량을 대폭 증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농가소득을 높이기 위해서 주품종인 신고배의 숙기조절을 할 수 있는 영농기술보급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또하 나주배의 명성을 저해하는 수출배 불합격품을 시장에서 격리할 수 있는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활동영역을 널혀 가고 있는 자연예총

최근에는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장소의 넓고 좁음에 상관없는 고소득 창출사업의 한국춘란 재배 및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자유무역체제에서 쌀값 하락 등 갖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을 위해 농촌 소득향상에 열정을 다하는 배회장의 노력은 농가 소득의 향상의 공적과 더불어 존경받는 위인으로 미래가 기대된다. 아무런 소리 없이 눈에 보이지도 않게 나주의 경제를 일구는 숨은 인재들이 바로 나주인의 자랑이고 긍지를 갖게 해주는 참 일꾼으로 존경받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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