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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나주불회사원진국사부도

  • 입력 2016.08.27 11:06
  • 수정 2018.02.1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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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불회사원진국사부도

종 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
명 칭 나주불회사원진국사부도(羅州佛會寺圓眞國師浮屠)
지정(등록)일 2000.06.20
소 재 지 전남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산212번지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원진국사부도


나주 불회사에 있는 원진국사의 묘탑이다.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숨을 거두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리었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해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다도 불회사 원진국사부도는
맨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으나 맨 아래의 기단부와 그 위 몸돌이나 지붕돌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앞면에는 부도의 주인공과 세운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세워진 이 부도는 조성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으며 고려말 부도 양식 변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다.

▲ 부도 찾아 올라가는 길

부도의 총높이는 175㎝이며, 기단부 높이 82㎝, 탑신 높이 60㎝, 옥개석 높이 33㎝이다. 부도의 맨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으나 맨 아래의 기단부와 그 위 몸돌이나 지붕돌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지대석은 정사각형으로 두껍고 큰 3개의 판석으로 짜 맞추었는데, 앞면은 지상에 노출되었으며 뒷면은 묻혀 있는 상태이다. 그 위로 받침석 없이 원형의 복련석을 앉혔으며, 겉면에는 얕은 음각으로 연화문을 장식하였다. 복련석 위로는 중대석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형식은 중앙에 약간 배가 부른 고복형이면서 역시 원형이며 별다른 조식은 없다. 상대석의 앙련은 원형이며 역시 간략화된 음각 8엽을 새겨 위의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배흘림기법이 보이는 팔각이다. 탑신 앞면에는 “圓眞國師通照之塔(원진국사통조지탑)”이라는 해서체의 당호가 새겨져 있고, 탑신 하측에는 “延祐四年丁巳五月日立(연우4년정사5월 일입)”이라 새겨져 있다. 옥개석은 우동이 뚜렷한 팔각이며 귀꽃 부분에서 약간 반전을 보였고 밑면은 수평이다가 처마 쪽에서 가벼운 곡선을 나타냈다. 상륜부는 유실되었다.
원진국사부도는 그 조형기법이 빼어나지는 않지만 14세기 초반 고려말의 부도 양식 이 통일신라 9세기경에 발달했던 팔각원당형 부도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천되고 있는 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원진국사부도안내판

불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창건 시기에 관해서는 두 가지 기록이 전하는데, 384년(침류왕 1)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창건하고 681년(신문왕 1)에 왕명으로 중창되었다고도 하고, 367년(근초고왕 22)에 희연이 창건하고 713년에 연기가 중창했다고도 한다. 그 뒤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중건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의 이름이 불호사로 기록되어 있어 창건 때는 불호사였다가 1808년경에 불회사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인 1664, 1747, 1798년에 세 차례나 불이 나 건물이 타버렸지만 그때마다 계속해서 중창이 이어졌다. 1693년에는 괘불탱화가 조성되었다. 불회사 대웅전(보물 1310)은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이며, 그 안에는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등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석가모니불은 종이로 만든 것으로 매우 드문 예이다. 대웅전은 8월 현재 보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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