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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교육
  • 기자명 나주토픽

벽류정[ 碧流亭 ]

  • 입력 2016.07.30 10:28
  • 수정 2016.07.3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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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경관, 나주의 정자 중 가장 멋진 명소

벽류정[ 碧流亭 ] 

지정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전남유형문화재 제184호
지정일 1992년 11월 30일
시대 조선
종류/분류 누정
크기 정면 3칸, 측면 3칸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벽산리 475

▲ 벽류정

전남 나주시 세지면 벽산리 금천(錦川)곁에 있는 벽류정은 1992년 11월 30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으며 나주에서 보기드문 경관을 자랑하는 정자로 주변에 대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빼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나주의 수많은 정자가운데 가장 멋진 곳이다. 1640년(인조 18년에 김운해가 건립하여, 현재는 광산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678년(숙종 4)과 1862년(철종 13)에 각기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단층 건물로, 어간에 중재실을 둔 목조 유실형 정자로 주변의 대숲은 조주의 절개를 상징한다.

원래 이곳은 들판 한 가운데 있는 고대시대 고분이었던 곳에 성종(세종?)때 호조참판을 지낸 청계(淸溪) 조주(趙注)가 건립하여 여생을 즐겼고, 손이 단절되자 그의 외손인 김운해(金運海 : 32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괄의 난때 어가를 호위하여 공주에 내려갔고, 병자호란때에는 남한산성에서 호종한 공으로 전마와 갑옷 등을 하사받았다.)에게 양여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단층 건물로, 어간에 중재실을 둔 목조 유실형 정자이다

▲ 벽류정

1678년(숙종 4)과 1862년(철종 13)에 각기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단층 건물로, 어간에 중재실(中齋室)을 둔 목조 유실형 정자이다. 지붕은 골기와 팔작지붕이다. 처마의 평고대는 30여 척 길이의 통재를 사용하여, 처마의 흐름을 유려하게 의장하였다. 돌다짐식 허튼층 기단 위에 덤벙주춧돌을 놓았다. 기둥은 두리기둥을 세웠고, 중재실의 4고주는 넉넉한 모기둥을 써서 무량결구하였다. 기둥머리는 초익공 연화 앙서와 이익공 쇠서로 꾸몄는데, 절충식 익공양식으로 균형있는 모습이다.결구 중 가장 큰 특징은 중심을 비껴 엇덕거리 이음으로 간결법을 쓴 것이 독특하다. 평상적으로 4고주에 윗인방을 가로로 결구하여 매입맞춤을 하였다. 중재실의 4명의 결분합문을 두었고, 바닥은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후면의 툇마루가 1단 높게 설치된 것으로 보아, 본래 온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벽류정 내부에는 〈벽류정중수기 碧流亭重修記〉·〈중수벽류정상량문 重修碧流亭上樑文〉 등 11개의 편액과 각종 시문(詩文), 글씨에 능한 황사 민규호(閔奎鎬)와 위당 신헌(申櫶)의 현판과 김수항(金壽恒:1629~1689)의 정기 등 11개의 현액도 함께 보존되어 있다. 나주에서 보기 드문 경관을 자랑하는 정자로, 주변에 대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어우러져 있다.

정자는 중앙 어간에 재실(齋室)을 둔 단층 유실형(有室形)으로서 전후좌우 정대칭 공간을 구성하였으며, 돌다짐식 축산(築山) 위에 낮은 외벌대의 허튼층 기단을 쌓아 넓적한 덤벙주초를 놓고 원형의 외진주(外陣柱)와 방형의 내진주를 세우고 있다.

기둥 위에 주두(柱頭 : 대접받침) 밑에는 창방(昌枋)을 걸치고 도리와 주두 사이에는 포작(包作)을 꾸몄는데, 쇠서[牛舌]에 연화각(蓮花刻)을 얹은 무출목(無出目) 초익공을 창방과 직교 짜임하고, 기둥 내부에는 초각장식이 화려한 보아지를 두었다.
또한 모서리기둥[隅柱]의 포작도 양면성을 갖도록 하였고, 기둥 사이의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여 사이에는 태극 혹은 귀면(鬼面) 형상의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이 설치되는 등 장식성이 강하다.
특이한 것은 중재실(中齋室)의 내진 4고주는 무량결구(無樑結構)로 보 대신 인방(引枋)을 ‘井’자형으로 길게 걸어주고, 그 인방들은 4고주에 매입하지 않고 중심을 비켜 이음하고, 들보를 결구하듯 처마도리의 장여에 결구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문은 4면 모두 2분합 들어열개문으로 하여 재실의 사방을 개방할 수 있게 하였고, 재실 천장은 널반자로 대고 보꾹층을 두고 있다.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나, 후면 툇마루를 1단 높여 설치한 것으로 보아 함실(函室)을 둔 온돌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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