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농촌에 살아온 자연인의 삶 최병식(87세) 나주시 남평읍 오계리
나주시 남평읍 오계리에 가면 800여 평의 집에 아름다운 수목을 가꾼 집을 발견 할 수 있다. 요새 백합꽃이 집 앞 처마 밑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는 그 집에 소나무, 동백, 향나무, 꽝꽝이나무 등을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가꾸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20여 년 동안 나무를 가꾸어온 이 집의 주인은 올해로 87세를 맞이한 최병식씨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한평생 고향 땅을 지키며 살아온 최병식씨가 800여 평 정원에 각종 나무를 심고 틈나는 대로 손질하며 가꾸어온 것이다.
아마도 최병식씨가 살아온 한평생이 우리네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여느 농촌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식들을 위하여 눈을 뜨면 일을 하고 그저 근면성실하게 살아온 인생들, 바로 이들이 이 나라를 지탱해온 평범하나 위대한 인생들이라고 해야겠다.
그들 위에 서서 지위와 권력과 돈을 거머쥐기 위하여 온갖 위선적인 행동을 일 삼아온 자들과는 아마도 근본부터가 다른 인생이라고 해야겠다.
평생 유학자로서 공부만 해온 최병식씨의 아버지는 풍수에 빠져 매일 명당자리를 본다는 풍수들과 함께 산을 보러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집안일을 내팽개쳐버린 아버지를 둔 탓으로 7남매의 형제자매를 가진 최병식씨는 장남으로 일찍이 집안일에 몰두해야만 했다. 고작 십 여리 밖의 남평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동생들을 가르치고 여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때 담배를 해서 낮에는 담배를 따고 밤에는 엮어 남평역에서 수매를 하면 내다 팔아 동생들을 가르쳤지요.”
집 처마 밑에 담배를 따서 달아 말리느라 그 무게 때문에 집이 앞으로 쏠렸다고 말하는 최병식씨는 바로 밑에 동생은 교사로 또 막둥이 동생은 금호타이어 이사를 지낼 만큼 가르쳐 냈던 것이다.
나주시에 사는 이씨 처녀와 결혼한 최병식씨는 슬하에 2남 7녀를 두었다. 아홉이나 되는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고 여의는 데까지 최병식씨는 또 열심히 일을 했다.
오계리 마을의 발전을 위해 이장일도 맡아 보고 산림관계 일도 맡아본 최병식씨는 49세 때부터는 마음속으로 10년을 작정하고 낙농업에 투신하게 된다. 젖소 20마리를 융자를 받고 키워 우유를 짜서 파는 목장 일에 매달린다. 논과 밭에 옥수수 등 사료작물을 심어 사일로우를 만들어 젖소를 먹이고 우유를 짜서 파는 일은 한시도 쉴 틈 없는 끝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59세 되던 해 마음속으로 정한 기한이 되고 이 정도면 경제적으로 풍요롭다는 생각을 한 최병식씨는 목장 일을 바로 정리한다. 사람이 돈에 맛이 들고 일이 잘되면 도무지 그것을 그만두지 못하는데 최병식씨는 그만 둘 때를 알고 손을 놓을 줄 알았던 것이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목장에서 일을 하면서 지내기 10년, 그것을 그만 두고는 내외간에 국내 여행을 실컷 다녔지요. 못 가본 곳을 우선 다니자 하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요. 그리고 집에다가는 국화를 심어 재배했지요.”
목장을 운영하여 돈을 벌고 광주에 아이들 집도 장만하고 땅도 사고 딸네들 시집도 보내고 부모로서 할 일을 어느 정도 하게 된 최병식씨는 인생 말년을 유유자적하며 여유롭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큰아들이 조선대학교를 다닐 때 5.18을 만나 공수부대에게 붙들려 죽도록 맞아 거의 초주검이 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여 몸이 상해버린 일을 당했다. 군사독재 전두환 폭압의 시대 검은 구름이 결코 비켜가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큰아들은 몸을 회복해 지금은 서울에서 어느 기독교 계통의 목회자로 재단 이사장을 지내라고 권유할 만큼 크게 성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평생 먹고 살만큼 돈도 있고 직업이 있는데 더 큰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 지위가 높아지고 큰돈을 다루는 일을 하다보면 자칫 잘못하였다가는 일을 그르쳐서 징역 가고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가급적 그런 일은 맡아 해서는 안된다.”
최병식씨는 인생살이에서 깨달은 지혜로운 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심혈관 계통이 좋지 못하여 수술도 하고 아산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니면서 치료를 해온 최병식씨는 동의보감과 방약합편의 책을 탐독하고 익혀 자기 병은 자기가 스스로 고칠 줄 알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직접 한약재를 조제하여 먹고 있다. 풀이나 나무가 어떤 약효가 있는지 상당한 식견과 지식을 가지고 자기 몸을 자가 치료해 건강을 지켜온 만큼 집에서 먹는 된장 간장, 각종 야채 등도 800평 집 정원에 가꾸어 손수 거두어 무공해 음식을 먹고 있다. 밖에 나가서 외식을 되도록 삼가고 집에서 심고 가꾸고 거두어 먹으면서 건강관리를 하는 것이다.
최병식씨의 하루 일과는 정원의 나무와 채소 가꾸기이다. 국화를 기르다가 손을 댄 것이 나무였는데 정원에 소나무, 향나무, 동백나무 등을 심고 모양을 내서 가꾸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지금도 정원에서 하루 종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기르는 것이다. 작게만 기르는 소나무나 동백나무를 크게 길렀는데 기백과 운치가 넘친다.
세상에 배움이 많아 지위가 높고 권력과 재물이 많아 자랑할 것이 많은 인생보다도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더러 흠도 있고 세상의 거센 풍파에 씻긴 자국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 깊은 지혜를 감추고 사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이 실상은 훨씬 아름답고 값진 것이다. 돈과 출세와 탐욕과 쾌락과 허명에만 미쳐 돌아가는 세속에 찌든 졸렬한 인생들이 어찌 그 깊은 삶과 사람의 깊이를 알랴!(글 청야 강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