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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교육
  • 기자명 나주토픽 기자

일제강점기 만행의 현장 구 나주경찰서

  • 입력 2016.02.20 09:35
  • 수정 2016.02.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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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중심의 전통도시가 새로운 도시로 형성과정 내현

구 나주경찰서
[ 舊羅州警察署 ]

호남의 곡창지대를 이루는 나주평야에 위치한 나주시는 역사적으로 전라남도 지방의 전통적인 중심지로 문화의 보고임과 동시에 치욕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그 중의 한 곳 나주시 금성동 39-2번지에 있는 옛 나주경찰서 건물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 일본인에 의하여 건립된 붉은 벽돌의 조적식 구조 2층 건물이다. 연면적은 608.77㎡이다.

1982년까지 나주경찰서로 사용되다가 경찰서가 성북동으로 이전하면서 소방서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2002년 11월 소방서가 신축 건물로 이전한 뒤 현재는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나주지회와 나주시 의정동위회,나주사랑시민회, 참학부모나주시지회, 나주시시민단체협의회 등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 구 소방서청사 당시 모습
▲ 현재모습

일제 강점기에 민족 운동가들이 많은 고초를 겪은 곳으로, 유치장 등의 시설이 남아 있으며 2002년 5월 31일 문화재청에 의하여 등록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일본이 세운관공서 건물로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2층 건물로 창문과 출입구 등 건물의 외관상 중요한 부분에 흰색 페인트를 칠했으며, 수직성을 강조한 단순한 형태로 정면 중앙 부분에 주 출입구를 두었는데 주 출입구는 원형 기둥 2개로 지지되는 캐노피로 처리하였다.
건물을 정면에서 보면 주 출입구가 건물의 정 중앙에 위치하지 않고 우측으로 치우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붕 형태에서도 좌측은 모임지붕의 형태인데 반하여 우측은 박공지붕의 형태로 좌측과 우측이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건물의 원래의 모습은 좌측과 같은 형태였고 우측 부분 일부가 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건물의 후면 부분은 후에 증축된 부분으로 건물의 좌측에서는 1개 층이 증축되었고 우측에서는 2개 층이 증축되었다. 구 나주경찰서는 구 나주역사와 함께 옛 나주읍성의 남쪽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도시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지어진 건물로 읍성 중심의 전통적인 도시 공간이 일본에 의해 변형되면서 새로운 도시의 중심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우리 국민을 억압하고 민족 운동가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행했던 곳으로, 당시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이곳에서 일본 경찰은 학생시위 당시 광주에서 응원대까지 불러와 학생시위를 진압했고 시위학생들과 그들을 지도했던 항일 운동가들은 말할 수 없이 모진 고초를 겪은 유서(由緖)깊은 장소로 후손들의 애국사상을 북돋우는 산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다.
구 나주경찰서 건물이 자리한 나주시 금성동은 현재는 나주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나주시의 구도심에서 본다면 남쪽 끝 부분에 해당된다.

구 나주경찰서에서 서쪽으로 약 200여m 떨어진 위치에는 옛 나주읍성의 남문인 남고문이 자리하고 있고, 남고문에서 다시 서쪽으로 약 500여m 떨어진 위치에는 전라남도 지정기념물 제183호인 구 나주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구 나주역사는 1913년에 준공된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1925년에 신축된 것이다.
구 나주경찰서는 구 나주역사에서 이어지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형성된 나주의 새로운 중심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나주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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