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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기자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룬 양일선(梁一善) 새마을 지도자

  • 입력 2015.12.31 09:29
  • 수정 2015.12.3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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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룬 양일선(梁一善) 새마을 지도자

세계유네스코 기록물 유산에 등재 된 새마을 운동 내용 1톤 트럭 양의 살아있는 기록물을 기증

새마을 지도자 양일선
나주시의 서쪽관문으로 국도 1호선 및 호남선이 지나고 있으며 특히 무안~ 광주간 고속도로(문평IC)개통으로 명실상부한 사통팔달의 교통요충지가 되어 새롭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문평은 호국충절의 고장으로 거북선을 만들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나대용장군(오륜마을)의 생가와 묘소가 있고 고려 말 충신이며 왜구 격퇴를 위해 일생을 바친 정지장군(죽곡마을)의 출생지로 이름난 곳이다.

본지 50호에서는 70년대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하며 근면, 자조,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숨은 기적을 이룬 새마을운동 지도자 3 인(전북 정문자, 충북 하사용 – KDI:한국개발연구원 자료) 중의 한 사람으로 20여 년 동안의 새마을운동을 세심히 기록한 소중한 자산을 기증한 역사기록관으로 알려진 나주 문평 옥당리 금옥(衾玉)마을 양일선(梁一善 67)씨를 찾아보았다.

젊은 농사꾼 양일선이 살던 전남 나주군 문평면 옥당리 금옥마을은 오랜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요하기만 한 곳이었다. 1970년대 초부터 새마을 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이 마을만은 1970년대 중반까지도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을 지나가던 젊은 도지사 고건의 방문으로 금옥마을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계기를 맞는다. 고건 도지사의 질책과 격려, 뒤이은 군청새마을 관계자들로부터의 교육과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지역 농촌마을이 새마을 운동을 벌여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피나는 노력을 하는 모습을 전해들은 양일선을 비롯한 이 마을 청년들은 비로소 눈을 뜨고 뒤늦게 새마을 운동에 뛰어든다.
양일선 지도자는 1977년부터 1997년까지 20여 년간 마을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로서 가난에 찌든 금옥마을을 잘사는 농촌으로 일궈나가는 데 앞장선 대표적인 새마을 지도자로 꼽힌다. 특히 양 지도자가 이끈 금옥마을은 1976년 뒤늦게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여 가장 짧은 시일 내에 여느 선진 새마을 농촌에 버금가는 우수마을로 변신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특징적인 곳이다.
청년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금옥마을 주민들은 환경개선 사업에서 시작하여 공동 작업단을 구성해 이웃 마을에서 원정 작업까지 해서 번 돈으로 마을 기금을 만든다. 그리고 소득을 늘리기 위해 멀리 사는 축산 농가를 금옥마을로 이주시켜 기술을 배워가며 축산으로 영농구조를 바꿔 놓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양 지도자는 20여 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마을 일에 봉사하면서 모든 사업과 회의 내용 및 과정을 일일이 기록하여 남겨 놓았다. 그의 기록은 학력이 그리 높지 않은 농촌 주민들이 새마을 운동을 어떤 식으로 진행해 가는지 역력히 보여준다. 전국 곳곳의 새마을에서 남긴 이 같은 기록들은 2000년대에 와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에 이른다.
새마을운동은 지금도 일부 사학자들로부터 장기집권과 독재를 위한 수단이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세계 역사 유래에 없는 단 기간의 획기적인 위업을 남긴 대업으로 그 기록물은 지난 2013년 난중일기와 함께 세계유네스코 기록물 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1947년 전남 나주시 문평면 옥당리에서 태어난 양 지도자는 1963년 나주 중을 졸업하였다. 1977년 옥당리 이장 겸 새마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0년 취락구조개선 마을 공로상(나주군수), 1981년 반상회 및 이장 업무수행 표창장(내무부 장관), 새마을영농회 활동 공로상(농협 전남도지회장), 새마을 운동 활력화시책 공로상(나주군수) 등을 수상했다. 1983년 문평면 새마을 지도자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새마을 지도자 성공사례 발표 3등상(나주군수), 새마을 운동 표창장(새마을 지도자중앙회장)을 받았다. 1984년에 새마을 운동 활력화 시책 적극 협조 공로상(내무부 장관), 식량증산 장려로 지역사회 공헌 국무총리 표창, 1987년에 새마을 성공사례 발표 전남도 최우수상, 새마을 포장(대통령) 등을 수상했다. 1998년에는 옥당리 개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소득향상을 통해 만들어진 마을회관, 창고, 공동부지 등의 마을 공동재산 공동기금 등은 지금도 그의 업적을 남아있다. 작은 시골 마을 옥당리 금옥마을에 작은 기적 속에는 양이장의 피와 땀 그리고 그의 지혜로운 기지(奇智)와 금옥마을 구성원들의 공동체노력이 숨어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영농기술의 습득과 각 기관을 찾아다니며 마을 공동체의 이익 추구를 위해 여념이 없었던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달랑 ‘논 2마지기(660㎡)’ 밖에 없지만 그의 노력으로 이뤄진 가난극복을 기억하며 행복한 미소로 만족하고 있었다.

최근 양지도자는 마을회관에서 지낼 제식행사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려운 시절 논 15마지기(4,950㎡)를 기증하고 마을 사랑에 앞장섰던 고(故) 이동현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1978년 작고 이후 한 해도 거름 없이 제사를 지내며 그의 인간미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각종 매체에 소개된 자료를 지켜보는 양지도자의 가슴은 뿌듯하기만 했다. 그의 땀과 영혼이 빛을 발휘함을 물론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 오행금(66)여사의 사랑이 함께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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