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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폴리스 혁명’으로 나주를 세계에 알린 신지식인 ㈜ 가보팜스 (無常)김희성 대표
독일유학의 꿈을 접고 시작한 빠금 살이 꿀벌농사에서 대한민국 정상의 양봉산물을 산업화로 이끌어
지난 9월 15일 개최된 2015 대전세계양봉대회(대전컨벤션 센터)에서 17일에 (주)가보팜스와 대학 및 연구기관과 산학연을 통해서 임상실험, 연구사례를 토대로 세계의 연구사례를 과학적이고 의료학적인 근거를 모아 만든「프로폴리스 면역혁명」출판기념회가 대성황을 이루며 나주인의 기상(氣像)을 세계에 알리는 뜻 깊은 날이 되었다. 그 날의 주인공은 2000년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던 자랑스러운 나주인 (주)가보팜스 김희성 대표였다. 나주토픽 47호에서는 나주를 빛내고 신개념 경영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김 대표를 찾아 그의 여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찾아보고자 한다.
김 대표는 전남 나주의 (주)가보팜스 대표이자 50년 가까이 천연 벌꿀 제품을 생산했고 프로폴리스 등 특허 다수를 보유하고 프로폴리스액상ㆍ캅셀, 전통꿀차, 유자진액, 비누ㆍ치약 등 제품을 개발하며 연구하는 저명인사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나주 토계동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斗模)의 1남 6녀 중 가장 사랑받는 귀남(貴男)이로 태어나 대한민국의 귀남(貴男)이로 일찍이 예약을 해두었다.
항상 밝은 미소와 맑은 성품은 칭찬받는 사람으로 알려졌고 작고하신 부친의 가르침 ‘인사를 잘해라! 돈에 대한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항상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김 대표가 긍정적인 사고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인생 첫 도전과 만남은 독일유학을 염두에 둔 나주한독기술고등학교(현나주공업고등학교)의 지원이었고 한국인 청소년에게 유학의 꿈을 이뤄 준 벽안(碧眼:눈동자가 파란 눈)의 한국인 독일 교육자 호만애암(好萬愛菴)선생님의 만남이었다. 그의 인생 속에 주어진 가장 큰 선물중의 하나로 가슴속 깊이에 남아있는 학교의 교훈 ‘정확, 근면, 친절’과 부친의 가르침 ‘인사와 신용의 개념’은 김 대표 인생철학의 바탕을 이루었고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
사재와 독일 후노보재단의 후원으로 다수학생에게 독일유학의 꿈을 실현해준 호만애암 선생님의 후원 중단과 귀국명령, 군 입대 제도의 개편은 김 대표에게 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독일유학의 꿈이 사라진 것이었다. 잠시 동안이나마 막막해지며 좌절을 맞이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주변에서 꿀을 키우는 것을 보면서 흥미와 함께 짜릿한 전율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50년 가까운 양봉의 길을 오게된 꿀벌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용돈벌이와 함께 시작한 양봉 1통이 오늘 날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가보팜스의 시발점인 것이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꿀벌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꿀벌의 세계와 자연은 가보팜스가 추구하는 길이다”
고교 졸업 후 공부를 위한 잠시의 입산(入山)과 군 입대의 머무름이 있었지만 그의 꿀벌인생은 거침이 없었다. 74년 군 제대와 동시에 그는 양봉에 열정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의 경험이었지만 그의 명석한 두뇌와 열정으로 새로운 양봉의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전국이 그의 활동 무대로 변했고 그에게는 휴식이란 사치도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대가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었지만 항상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에게 또 다른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의 아늑한 휴식마저도 아까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대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지 않았다. 합리적 사고와 타당성을 갖춘 그의 과학적 사고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양봉으로 성취욕을 충족시키며 김 대표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부(副)를 쌓아가면서도 단 한시도 그의 뇌리에서 내보내지 않았던 또 다른 꿈 ‘꿀과 농특산물의 융합을 통한 전통식품 생산’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특별한 노력은 곧 바로 기관과 대형마트의 호응으로 받아들여지고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고교시절 빠금살이 양봉으로 시작한 그가 84년 무등봉업을 설립하여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것이다. ‘정확, 근면, 친절’의 기업정신으로 시작한 사업은 바로 정부지정 농어촌 특산단지 지정이 되었으며 90년 가보농산으로 상호 변경후 농림부 전통식품업체 선정 등과 농산물 유통분야 수상, 대통령상 수상 등 수없이 많은 표창과 공적을 쌓아갔다. 특히 2000년의 신지식인 선정과 신기술벤처기업으로 지정은 기업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해주었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세계를 향해 더 큰 이상을 이루기 위해 하나하나 소박하게 실천해 나갈 수 있었다.
‘인사와 신용’의 교훈에 대한 실천은 국내외 바이어들과 고객들에게 그대로 실천되고 신뢰로 이어져 바이어들과 고객들을 매료시켜버렸다. 또한 회사 임직원 또한 김 대표에 대한 신뢰는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회사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불편한 노사관계가 진행된 것도 없고 급여일자를 어긴 적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사업의 성공 뒤에는 그의 지혜와 아름다운 기업정신을 찾아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의 번역으로 세계시장에서 대화하며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의 열정, 기업비전에 매료된 바이어들은 앞 다투어 계약 성사를 이뤘으며 신뢰도 높은 제품생산으로 대형매장들의 판로를 세계로 확장해 나갔다. 특히 로컬 바이어(local buyer) 활용과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방식의 사업은 교민이 아닌 현지인 시장에서 그의 독특한 기업 철학의 실천으로 안전하게 기업을 정착하게하고 있다.
가끔 현 공장으로 확장 후 2010년 전후(前後)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해본다. 유연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소신과 철학의 소유자 김 대표도 가슴속 깊이 눈물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족한 자본으로 설립한 신축공장을 8년간 일부분 씩 증축해가며 고난을 극복했던 시절은 언제까지라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라 했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항상 아름다운 사랑으로 지켜주었던 그의 부인이자 동반자 박정순(62)여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결혼과 동시에 가족을 돌봐야 했던 1남 6녀의 장남 김 대표와 부인은 부친의 요절(夭折)로 34세의 나이에 가장이 되어 동생들을 뒷바라지 했다. 지금도 부인의 사랑과 배려에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두 자제 영진(32), 수영(30)도 동업자로서의 역할분담에 무엇보다도 더 자긍심을 갖기도 한다.
금년 50억의 매출을 기록한 김 대표는 3년 이내 100억의 매출 목표를 구상하고 있다. 필자는 ‘친절, 근면, 정확’, ‘인사와 신용’ 철학의 사고로 무장된 그의 성공을 확신한다. "열정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경영 철학과 함께 후배들에게 ‘꿀벌처럼 살아라!’라는 살아있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꿀벌의 부지런함도 좋지만 남을 위해 일하는 꿀벌의 모습을 사랑하는 김대표의 개화(開花)와 결실이 나주인의 큰 빛이 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