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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나주토픽 기자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룬 은혜로운 세대의 나주노인회 성제(省齋) 정병호(鄭昺浩) 회장

  • 입력 2015.10.22 16:14
  • 수정 2015.10.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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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룬 은혜로운 세대의 나주노인회 성제(省齋) 정병호(鄭昺浩) 회장

6 0 년 대 이후 유통의 원조 빨간 트럭 대한통운 나주소장으로 나주경제 이끌어

 

제19회 나주시 노인의날 행사가 10월 14일 나주실내체육관에서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노인회나주시지회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참석하신 분들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어르신들은 단순한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닌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룬 세대로 오늘 날 우리에게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신 은혜로운 분들이시다.

해방 후 혼란의 시대와 6.25전쟁을 겪으며 국민소득 35달러 문맹 80%의 최약소국의 빈민들이 28,180불(2014년 국민소득)의 고소득 국민으로 승격된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다시 한 번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다.

본지 46호는 '지금 우리의 역할은 애국과 봉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19,276명의 나주노인회를 이끌어 가시는 성재(省齋) 정병호 나주시 노인회장을 찾아보았다.
인자로운 모습과 겸손한 손님맞이에 정평이 나있는 정 회장은 옆 탁자위에 쓰다 남은 화장지를 한 번 더 사용하시며 󰡐값싼 화장지지만 한 번 더 쓰고 버리는 습관이 고쳐지질 않는다.󰡑하며 가벼운 미소와 함께 보이는 그의 모습에는 몸에 베인 친절과 절약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정 회장은 다시에서 정미소를 운영하시는 부유한 부모의 가정 2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해갔다.
지금은 전대 경영대학원과 성균관대학 유학대학 1년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였지만 당시 부잣집 아들치고는 학력이 화려하지는 못하다. 고개가 가웃둥거려지는 부분이지만 서중 낙방 후 금천중(당시 원예중)에 진학하고 졸업 후 취학을 포기했다. 당시 할아버지의 멋지고 독특한 성품은 정 회장에게 상급학교 진학보다는 한학지도를 통하여 인생의 깊이와 풍류의 멋을 풍기는 인격을 갖추게 하였다.

성인의 격을 갖추기 직전이었지만 공부와 더불어 때때로 손주의 주법 지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술 한 잔 속에 담긴 또 다른 인생길에도 미래가 숨어있음을 알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는 바로 도전정신으로 이어졌고 31세의 젊은 나이에 당시 69년 대한민국 도로를 점령했던 유통의 원조 대한통운의 나주 소장의 직책으로 그의 인생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본인 소유 4대의 차량은 당시 큰 재산(1,000석으로 인수)이었고 우연히 찾아온 인수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친과 담판을 벌여 설득과 인수에 성공하여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당시 그 직위는 돈이 없으면 생각지도 못한 것은 물론 지역 기관장 대우를 받을 정도였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후 지역의 명예지서장, 선출직 통일주체 2대 대의원(40세), 나주향교 전교, 대한통운 중앙회 부회장, 나주시 노인회장 역임, 鄭씨대종회장, 다시초 총동문회장연임 둥 고른 분야에 회장을 맡아 지역발전에 봉사에 앞장 서왔으며 일에 대한 열정은 지금 역시 한 치도 다름이 없다.

젊고 혈기왕성한 시절의 왕성한 활동은 지금도 그의 대단한 자랑이다. 하지만 서른 갓 넘은 나이에 어른들과의 동행은 자만심과 낭비의 폭이 넓어졌고 사업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러나 정회장은 스케일이 큰 멋진 남자였다. 󰡐나에게 실패는 없다!󰡑라는 마음과 휴지 한 장도 아껴 쓰는 특유의 절약정신과 배포로 위기를 극복했다.

위기는 정 회장에게 또 다른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완도 버스터미널의 인수였다. 대한통운 운영의 위기 극복으로 평정을 되찾은 그 순간 완도터미널 인수는 큰 사건으로 정 회장의 사업능력을 증명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었다.

부도직전 인수한 터미널은 계속 확장되어 지금은 30여개의 상가를 운영하게 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정회장에 안정을 주고 있다.

세상에 결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그의 도전 정신과 정확한 상황판단의 결정은 그의 고난을 간단히 물리쳐 버린 것이었고 그에게 닥친 고난을 슬기롭게 헤쳐 나갔던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교훈이 되고 있다.

이후 지금까지 그가 추진했던 사업은 큰 어려움이 없이 진행되었고 순탄한 인생의 길을 걸어왔다. 정 회장은 제 2대 통일주체 대의원에 출마하여 강력한 도전자를 물리치고 당선되어 지역에 봉사했던 시절, 나주향교 전교(典校) 시절 개혁을 통한 향교 활성화, 전라도 출신으로 그 누구도 꿈꾸진 못했던 대한통운 중앙회 부회장 임무수행, 두터운 신임으로 나주(羅州)정(鄭)씨 대종 회장으로서의 역할 등을 회고하며 스스로를 치하해보기도 한다.

지금은 2대에 걸쳐 나주시 노인회장을 역임하며 노인회의 조직강화, 사회봉사, 권익신장, 자립자활을 운영방침으로 정하여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우리의 활동은 애국이고 봉사다!󰡑라고 주장하며 󰡐매사 잘잘못에 남을 탓하지 말고 해코지하는 일없이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이 인생 성공의 길임을 강조한다.

26세 결혼 후 얻은 2남 1녀의 행복한 삶과 남부럽지 않게 멋진 인생 성공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는 역시 말없이 내조하며 헌신했던 사랑하는 아내 김삼여 여사가 있었다. 잔주름이 얼굴을 덮고 있지만 그것은 오늘 날 정 회장을 존재하게 했던 아름다운 인생이 계급장이었고 정 회장의 미소마저도 품고 있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었고 두 사람이 전해주는 것은 가슴 짜릿한 감동이었다.
나주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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