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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기자명 빛가람타임스 기자

시련과 역경을 사랑과 지혜로 극복한 진정한 인간승리자 김규동(金奎東) 조합장

  • 입력 2015.04.06 11:25
  • 수정 2015.04.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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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있어도 중단은 없다. 포기하지 마라!’

 
각 분야에서 성공한 유명인사 300인의 공통점을 조사 해보니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더불어 어떠한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사랑과 지혜로 이겨낸 인간 승리자였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있지만 인생 역경을 이겨내고 끗꿋한 삶을 살아가려는 인간 승리자가 주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면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려고한다. 지난 달 11일 나주 15명의 조합장 당선자 중 특별한 성공 과정을 걸어온 나주축협의 김규동 조합장이 그 주인공으로 인간 승리의 감동적이고 멋진 인생 과정을 조명해본다.

고난을 극복하면 인생을 가꾸어가는 길목
김조합장은 나주시 노안면 장동리에서 태어나 67년 동안 고향을 한시도 떠나본 적이 없는 순수 토박이 중의 한 사람이다. 스무 살이 넘은 그때까지 그의 인생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고. 어렵고 가난한 시절 농촌의 2남 3녀중 차남으로 태어나 4세때에 어머님을 여의고 6세때 사고로 형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본의 아니게 4대 독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술을 즐기셨던 부친은 남 돕기를 천성으로 여기시며 이웃의 어려움은 솔선수범 해결하 시는 인정 또한 훈훈하셨지만 가난의 틀을 벗어나진 못했다. 가난은 그에게 학교 교육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고된 농사일에만 전념을 해야 했지만 긍정적인 그의 사고는 주위의 어떤도움 요청도 웃는 모습을 보이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10세때 어린 나이에 농사일에 매달릴 때에는 등교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힘도 들었지만 그는 결코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작은 꿈은 좀 더 잘사는 미래의 꿈을 이루고 싶어 단 한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새어머니의 엄격한 통제가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주위의 이야기가 오히려 “콩 한조각도 나눠 먹는다.”는 새어머니의 말씀은 좋은 교훈이 되었다며 감싸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고 따스한 사랑이 가득찬 인간미가 넘치는 감동이 가슴에 스며들기까지 하였다.

5.16 군사쿠데타 후 박대통령 시절 그에게 연령에 맞춰 4학년에 편입할 기회가 주어졌다. 힘이 들었지만 배음의 기쁨으로 그는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어려운 환경은 일주일에 3일 정도 등교를 할 수 밖에 없었고 부족함은 낡아빠진 전과를 보며 배움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여유 있는 친구들과 결코 경쟁에서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당시 양주동 박사의 국어사전(영어단어 병기)을 손에 들고 틈나는 대로 글을 읽혔고, 법률용어집을 통한 지식의 폭을 넓혀 갔다. 또한 2천자 한문책을 구입해 틈틈이 한문을 익혔다. 특히, 육법전서를 3번이나 독파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청년 김규동은 가난과 상식을 뛰어넘으며 숨은 인격을 그렇게 가꾸어 나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살아온 과정들은 훗날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 설 수 있게 했고 성공의 디딤돌이 되었다.

18세 때 부친이 돌아가시고 가장의 역할이 시작되었다. 그에게는 사시사철 휴식이 없었고. 퇴비를 만들어 뿌리며 모를 심어 수확까지 그의 몸과 마음은 쉴 여유가 없었으며 항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축산의 길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성실함과 명석한 두뇌는 돼지 1마리를 1천여 마리의 양돈가로 후에는 200여 마리의 축산농가로 성장을 거듭하여 그의 능력을 검증 받았다. 25세가 되는 겨울 그는 지역협의회에서 새마을 지도자로 당선이 되었지만 주위의 근심거리도 되었다. 잊히지 않는 일화가 있다. 당시 이웃 농촌지도소장 나 모 씨가 그를 불러 ‘새마을 지도자가 어려운 자리네.’하며 은근히 포기를 권유했지만 그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오히려 지도소장과 면담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아가며 모든 일을 전임자에 비해 월등한 성적으로 업무를 처리 다짐하게 되었다. 지역 새마을 지도자 협의회에서 그의 진가가 여지없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사업설명회의 브리핑을 통해 ‘불확실 상태에서 똑똑한 청년 김규동’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또한 공문파기 파동까지 겪어가며 당시 엄청난 규모의 사업 한우 40마리를 마을에 들여와 부유한 마을로 만들어 낸 것은 그의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해준 것이었다.

한편 전국 새마을 지도자 대회에서 정부 고위강사의 강의에서 ‘땅을 가져라. 부자가 되는 길이다.’라는 재테크의 지혜를 통한 재산 증식에 도움을 받았고 경제, 교육 등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 무품 삵을 제공하며 배음(1.부모의 노력 2.신앙 3.조상을 철저히 섬기는 것)의 폭을 넓혀 가며 긍정의 힘으로 재산증식과 자녀교육 성공의 길을 열었다.

그 후 나주농민회장, 자치회장, 나주축협이사 및 감사를 거쳐 조합장까지 순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물론 쉬운 길만은 아니었다. 축협조합장 감사시절에 그의 등장을 꺼려하는 세력들로부터 감사 제명을 위한 2년에 가까운 송사(訟事)의 난관과 깔끔한 마무리는 그의 품격을 덧보여주게 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은 그의 힘의 원천이었다.
스물 셋 나이에 시집온 뒤 오직 믿음과 사랑만으로 뒷바라지 해준 아내 김평순(62)여사의 지극한 정성과 공인중개사, 검사, 교사, 의사, 사업후계자로 성공의 길을 걸어준 가족들에게 고마움과 무안한 애정을 느끼고 있다. 아버지의 권위를 내리고 자녀들과 함께 책을 펴고 공부하여 자신은 검정고시 합격으로 조·중·고등학교 과정을 넘어 통신대학교 교양학부까지 이수했었고, 자녀들의 성공을 이끌었던 열정은 교육계의 큰 등불이 될 것이다.

그는 성공의 길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교훈을 이웃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아울러 ‘한 가정을 일으키려면 3대가 노력을 들여야 한다.’라 하며 ‘세상만사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세상을 극복한 진정한 인간 승리자 김규동씨의 메시지는 훗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귀감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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