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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기자명 빛가람타임스

도로명주소와 ‘馬耳東風’

  • 입력 2013.12.26 14:35
  • 수정 2013.12.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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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간 사용해 온 지번주소는 사라지게 된다

▲ 이종환(나주시 종합 민원 과장)
2014년 청말띠의 해가 멀지 않았다. 내년에도 많은 법과 제도가 바뀌지만, 우리 일상생활에 미치는 획기적인 변화를 들라면 단연 ‘도로명주소 전면 사용’을 꼽고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1910년대 일제가 근대적 토지제도를 수립한다는 명목 하에 수탈 및 조세 징수의 수단으로 실시한 지번을 빌려 썼다. 그 동안에 토지는 분할, 합병되는 과정을 통해 배열이 불규칙하고 한 지번에 여러 개의 건물이 분포돼는 부작용이 속출하면서 지번주소는 위치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못했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도로명주소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다.

도로명주소는 도로 시작점에서 20m간격으로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 번호를 부여하여 도로명에 이 번호를 조합한 것이다. 나주로 48번은 나주로 시작점에서 480m에 위치한다. 즉 번호에 10m를 곱하면 해당 위치를 알 수 있어 비교적 과학적이다.

요즘 길거리를 걷다 보면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도로명주소 홍보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대대적인 홍보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아파트 입구와 엘리베이터, 시내버스,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등등 곳곳에서 홍보물을 볼 수 있으나, 아직도 주민들은 도로명주소 사용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문인 친구 중에 왕십이(王十二)란 자가 있었다. 어느 날 왕십이는 이백한테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하소연하는 내용의 ‘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 즉, ‘추운 밤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느낀 바 있어’라는 제목의 시를 보내 왔다. 이백이 답하기를 ‘세상 사람들 이 말 듣고 머리 흔드네(世人聞此皆掉頭 세인문차개도두)’, ‘마치 동풍에 쏘인 말의 귀처럼(有如東風射馬耳 유여동풍사마이)’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바람이 말의 귀를 스쳐간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나는 이백이 읊었듯이 ‘시인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세상은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것처럼, 도로명주소의 사용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것도 무관심의 극치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많은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기념품을 만들어 손에 손에 전달하며 ‘도로명주소 사용’을 홍보하고 있지만, 내집의 새 주소를 적어두거나 명심(銘心)하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빠른 정착은 어렵다. 1백년동안 사용해 온 옛 번지의 사용을 짧은 시간에 정착시킨다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기어코 해 내는 것이 우리 한국인의 강한 의지임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이제 그 의지를 도로명주소 사용에 발휘해주길 기대한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주소체계가 바뀐다. 우리가 약 100년 간 사용해 온 지번주소는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아픈 옛일만 추억속에 묻어 버리지 말고, 옛 번지의 사용도 추억의 강물속에 아쉽지만 띄워 보내자. 그리고 도로명 주소를 받아 들이는데 귀찮아하거나 어려워하지 말고 친한 친구를 맞듯,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듯, 내 곁에 두고 사랑하자.

2014년부터는 “도로명주소만이 법적주소로 유일한 주소!” 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자. 행정기관도 도로명주소 사용에 대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예정인만큼, 시민들도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 들으시지 말고 사용에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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