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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 기자명 빛가람타임스 기자

어른 부재의 사회가 부른 재앙

  • 입력 2014.12.0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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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수 행(시인)
필자는 10살 때 아버지를 잃어 버렸다. 어느 여름날 영산강이 범람했고,
아침 피난처에서 일어나 보니 강가에 있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집을 다시 지을 수 없었던-접도구역에 있는 집이 완전히 허물어졌을 경우 집을 다시 지을 수 없다는-법 때문에 밤새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지워진 집은 황색 모자를 쓴 군청직원들에 의해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았다.
매일 하교 길에서 만나던 싸움판은 초겨울까지 이어졌고, 건장하던 아버지는 매일 울분과 함께 들이킨 독주에 쓰러져 그 해 겨울을 못 넘기셨다. 비록 100여일의 싸움 끝에 움막 같은 집은 생겼지만 정작 더 큰 정신과 삶의 터인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어린 4남매의 장남인 한창 잘나가던 청소년기가 단숨에 흔들리며 비틀거렸고, 지천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쓰라린 아픔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어린 소년이 어른이 되어 집안의 대소사를 직접 챙겨야 했으니 그 일처리가 오죽 했겠는가. 마치 길이 없는 산길 홀로 헤쳐 나가는 꼴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독행獨行 학습은 시행착오로 이어졌다. 독서나 학문이 아무리 깊고 훌륭하다 해도 현실을 헤쳐 가는 지혜는 홀로 깨우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비의 풍모보다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길이 아닌 길을 갈려고 할 때는 함께 토론하고 사색하면서 가급적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지 않도록 가르쳤다. 특히 옳고 그름에서의 선택은 가혹하리만치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다 어른 부재에서 삶의 컴플렉스일 것이다. 언제나 약자-권력이나 재물적인 측면-로 살아온 필자에게 유일한 무기는 진정한 실력과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 정신, 비겁하지 않는 올바른 태도만이 당당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참다운 어른들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나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어 작가회의라는 단체를 통해 작은 침을 보태기는 했으나 역부족을 실감했을 뿐이다.

하여, 이 잘못된 현실을 추상 같이 꾸짖고, 매를 들어 바로 세우는 진정한 어른은 없는 것인가? 늘 반문하곤 했는데, 나이 오십이 넘기까지 겪은 바, 솔직히 털어놓으라 하면 한마디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단어다. 소위 어른행세를 하시는 분들이란 다름 아닌 이끗 앞에서 권력 앞에서 속칭 뒷구멍에서 호박씨나 까는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저마다의 소질을 통해 양심과 지조를 팔아가며 겨우 쇠뿔 위 싸움판을 벌이다 죽어가는 추한 꼴을 얼마나 많이 본 지 모를 지경이다. 더구나 분기탱천도 모자랄 이 사회가 너무 고요하다. 다들 귀 막고 입을 다문 채 먼 산이다. OECD 국가 중 ‘사회 공공성 확보’ 꼴찌라는 오명과 함께 멀쩡하게 무너져 내린 상황인데도 말이다.
참으로 망명이라도 하고 싶은 사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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